LIVING
A SUMMER HOUSE IN WHITE
이탈리아 풀리아에 자리한 하얀 여름 집
12m 타워에서 내려다 본 안뜰과 수영장. 중정 바닥은 빛을 굴절 없이 흡수하는 레체세 석재로 마감했다.
태어난 고향은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줄 제2의 고향은 고를 수 있는 법. 런던에 본사를 둔 건축사무소 도스(DOS)의 공동 창립자인 건축가 로렌초 그리판티니(Lorenzo Grifantini)는 최근 자신의 모국인 이탈리아에 여름 별장을 짓고 삶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런던 생활 20년 차, 이제 로렌초 가족은 여름이면 부츠 모양의 이탈리아 지도에서 뒷굽에 해당하는 풀리아(Puglia) 지역 최남단, 살렌토(Salento)의 한 조용한 마을 가글리아노 델 카포(Gagliano del Capo)에서 지내기 때문이다.
“약 10년 전부터 우리 부모님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대가족 모임을 살렌토에 있는 농가를 빌려서 하셨어요.” 로렌초는 20대 시절부터 살렌토에서 여름휴가를 보냈고, 결혼 후에는 아내 알레그라 피구스(Allegra Figus)와 함께 보내면서 제2의 고향으로 살렌토를 점찍었다. 오래지 않아 부부는 살렌토에 집을 짓는 데 뜻을 모으며 지역 조사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무려 3년간 살렌토 곳곳을 탐방했어요. 그러던 중 우리 부부가 잘 알고 좋아하는 마을의 역사적 중심지인 산 로코(San Rocco) 교회 뒤편에 있는 땅을 판매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10분만 걸으면 바다를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를 지닌 곳에 나온 부지는 지역 농부가 토마토를 재배하던 밭이었다. 당시 로렌초는 대지를 둘러보면서 바로 건축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주저 없이 토지를 매입했다.
미니멀한 거실과 오픈 키친. 빌트인 소파는 로렌초가 디자인했고 소파 쿠션은 테시투라 트레 캄파네(Tessitura Tre Campane)의 패브릭으로 제작했다. 커피 테이블은 로마의 갤러리아 미아(Galleria Mia). 벽에는 이 집 거실을 사진가 주세페 피에트로니로(Giuseppe Pietroniro)가 촬영한 작품이 걸려 있다.
로렌초는 런던과 살렌토를 오가며 ‘화이트 타워 하우스(La Torre Bianca)’를 완성한다. 시공부터 완성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화이트 타워 하우스는 눈부신 화이트만이 새집이라는 존재감을 알릴 뿐, 네모난 외관은 평평한 지붕을 얹은 직육면체의 현지 건물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 집은 주변과 차별된 현대적 건축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 개방적인 집을 짓고 싶었던 로렌초는 주변 건물로부터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벽으로 둘러싸인 형태의 집을 생각했다. 이러한 구상을 기틀 삼아 시작된 설계는 마치 ‘ㅁ’자 구조의 한옥처럼 담장과 여러 볼륨의 건물이 안뜰과 수영장을 품은 구조로 완성되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한쪽 끝 모서리에 12m 높이로 우뚝 솟은 타워가 자리한다는 것. “집을 설계하면서 풀기 힘든 과제가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바로 주변과의 조화였습니다. 저는 이 집이 마을의 역사적 요소와 어우러지고 경관 면에서도 흥미로운 존재가 되길 바랐습니다. 한참 고민하다 찾은 답이 이웃한 산 로코 교회의 종탑이었죠.” 로렌초는 교회 종탑 형태와 높이가 일치하는 12m 높이의 건물을 만들고, 이를 가족의 사생활 공간이자 매력적인 전망대로 구성했다. “타워 꼭대기 층에 오르면 바다까지 볼 수 있습니다. 이 타워는 교회 종탑과 일맥상통하지만 시야를 넓혀보면 살렌토 해안을 따라 흩어져 있는 수세기 전 세워진 망루를 연상케 합니다.”
로렌초의 설명을 듣고 보면 이 집을 구성하는 타워는 어쩌면 그리 튀는 존재는 아니다. 게다가 집 자체를 두고 봤을 때 타워와 L자로 이어지는 단층 건물과 담장, 안뜰은 그 높이나 규모의 격차가 극명함에도 차분하니 안정감 있게 다가온다. 의도적으로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건축적 효과가 톡톡히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아한 마감재나 상징적인 요소가 생성하는 이미지가 아닌, 화이트의 순수한 형태와 볼륨감으로 형성된 자연스러운 음영의 차이는 건물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실내 디자인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자연 요소가 공간을 채울 수 있도록 절제해 연출했다. 안과 밖이 서로를 끌어들이는 개방적인 구조를 취하는 가운데, 화이트 벽과 바닥으로 여백이 강조된 공간은 시시각각 변화를 선사하는 빛과 그림자의 향연으로 가득 차 있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붉게 익은 부채 선인장 열매.
담벼락을 따라 심은 선인장들로 둘러싸인 수영장. 거실 밖으로 나오면 펼쳐지는 수영장은 가족 모두에게 최고의 놀이터가 된다.
거실과 마당 사이에 설치된 대나무 캐노피는 다이닝 겸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타워에 마련된 침실.
인테리어는 영화 세트 스타일리스트이자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는 아내 알레그라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부부는 침실과 오픈형 키친, 거실 등 각 공간을 최대한 단순하게 디자인하고 여기에 지역색을 반영한 데커레이션을 기획했다. 소파는 바닥과 벽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물이 일체되도록 제작하고 독립형 가구와 패브릭은 이곳이 해안 도시라는 것을 감안해 바닷빛 블루와 화이트로 진행했다. 그리고 이 현대적인 건물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분위기로 시대를 초월하고 조화로운 무언가를 매치’하고 싶었던 알레그라는 현지 장인들이 제작한 수공예품을 인테리어 요소로 끌어들였다. 거실과 테라스 사이 멋진 그림자를 드리우는 대나무 캐노피, 휴양지 감성을 물씬 풍기는 밀짚모자 같은 조명 갓, 지중해 낭만을 머금은 리넨 직물이 이곳이 지중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위쪽 이웃한 교회 종탑과 같은 높이로 지은 화이트 타워. 타워 옆으로 낮은 단층 건물 블록이 L자형으로 이어진다.
아래쪽 화이트 타워 하우스는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이 집에 머물면 ‘런던의 번잡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가족을 위한 평온한 안식처를 가장 사랑하는 곳에 만들겠다’는 부부의 소원이 완벽하게 이뤄진 듯 보인다. 하지만 정작 부부가 밝히는 소회에서는 거친 감정의 소용돌이가 느껴졌다. 단순명료해 보이는 별장을 짓는 과정은 이미 두 명의 자녀가 있는 부부에겐 마치 세 번째 아이를 출산하는 것만큼 힘든 시간이었다고. “런던에서 이 정도 규모의 현장을 관리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상당한 노력과 현지 인력 사이의 조직력이 필요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혼자 현장에 왔죠. 현장 방문은 우리의 모든 노력이 구체화되는 시간이 되었어요. 만족과 실망의 경계를 오가는 날의 연속이었지만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속도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시공 과정에서 로렌초와 엔지니어는 현장의 암반이 깊어 표준 기초를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큰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27개의 철근 콘크리트 말뚝을 박아 올렸고, 그 위에 집을 지은 덕분에 바닥은 지상에서 1m 높이로 올라가고, 바닥 밑으로 자연 환기가 가능해졌습니다.”
이제는 화이트 타워 하우스에서 눈부신 여름을 즐기는 로렌초 가족은 저마다 별장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며 공간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고 있다. 로렌초는 건물 뒤편 담장과 건물 사이에 자리한 정원을 가장 좋아한다. “집에서 가장 평화롭고 한적한 곳인 데다 오렌지나무 위로 솟은 타워의 기념비적인 모습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명당이죠.” 건축가 시점에서 충분히 납득이 가는 답변이다. 그렇다면 아내의 관점은 어떨까? “타워에 있는 제 침실에서 한눈에 보이는 안뜰과 수영장 전망은 정말 아름다워요. 수영장 앞 선 덱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특별합니다.” 서로 애정하는 공간은 다르지만 살렌토의 자연미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이를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데 뜻을 함께하는 부부. 이들은 화이트 타워 하우스에 올 때마다 마치 입주 첫날인 듯 개선할 곳이 없는지 살펴본다고 한다. 집 꾸밈과 관리마저 휴가 콘텐츠로 치환하는 여유가 사뭇 부럽고 멋져 보이는 대목이다.
건축가 로렌초 그리판티니와 아내 알레그라 피구스가 안뜰의 담장을 따라 만든 선인장 가든에 앉아 있다.
Contributing Editor
LEE JUNG MIN
Photographer
Fabrizio Cicconi(Photofo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