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고택의 시간

짙은 삶과 풍경을 품은 고택에서 낯선 시간

소양고택 : 풍경과 이야기를 품은 곳
고택의 고요를 깨는 것은 새소리와 바람 소리뿐. 전북 완주 소양면의 종남산 기슭에 자리한 소양고택이 그곳. 여느 고택과 달리 이축한 공간으로 2010년 여름, 이 터와 인연을 맺었다. 주인장은 180년 된 고택 3채를 매입해 조심스러운 해체 과정과 문화재 장인의 손을 거쳐 고택 체험 및 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뉴욕에서 갤러리와 예술 경영을 공부한 주인장의 안목과 한옥의 가치를 지키려는 신념이 그 뒤에 있었다. 조선시대 고을 원님 관사로 쓰인 전남 무안의 고택을 이축한 제월당, 혜온당 등 각기 다른 역사와 이야기를 품은 고택, 한옥 서점, 카페, 무엇보다 시름을 잊게 할 풍경이 그곳에 있다.

아원고택 : 전통 위에 현대를 쓰다
방탄소년단의 화보 촬영지라는 수식어 없이도, 완주 아원고택으로 향할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건축가이자 아원고택의 대표인 전해갑이 직접 설계한 이곳은 전통 한옥을 중심으로 현대적인 건축의 갤러리와 생활관이 어우러진 형태. 경신년에 지어진 경남 진주의 250년 된 고택이 사랑채와 안채로, 전남 함평의 200년 된 조선 말기 서당이 이곳 아원서당으로 옮겨왔다. 넉넉한 종남산의 품에 안긴 사랑채·안채·별당·서당이 수채화처럼 펼쳐지며, 빗물을 모아 만든 마당의 연못은 세상의 고요를 다 삼킨 듯 더없는 평온을 선사한다. 한옥 스테이를 통해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는 고택 관람만도 가능하다.

우당고택 : 역사를 품다
충북 보은에 자리한 우당고택은 보성 선씨의 종택으로 당대 최고의 목수를 가려 뽑아 지었을 만큼 공을 들였다.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국인 연화부수형 명당으로도 꼽힌다. 1919~1921년에 지어진 이 집은 개량식 한옥 구조의 새로운 시도라는 학술적 가치 또한 지닌다. 고택의 규모는 더욱 놀랍다. 3만 평(약 10만㎡) 부지에 99칸 규모(실제 134칸이지만 왕실 외에는 100칸을 지을 수 없다는 제한 때문에 99칸으로 알려졌다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80칸 정도. 안채·사랑채·사당을 안담이 둘러싸고, 그 밖을 높은 바깥담이 둘러싼 독특한 구조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곳은 현재 후손이 거주하고 있으며, 한옥 스테이도 가능하다.

ⓒ한국관광공사 사진갤러리-이범수

명재고택 : 선비를 닮은 집
줄지어 늘어선 거대한 장독대와 배롱나무가 운치를 더하는 이곳. 논산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 학자인 명재 윤증 선생의 가옥으로, 1709년 지어졌다. 권위의 상징인 솟을대문도, 높은 담장도 없이 마을을 향해 활짝 열린 구조다.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어둔 집주인의 고고한 품격이랄까. ‘ㄷ’자 모양의 안채를 중심으로 곳간채와 사랑채가 기능적으로 배치됐다. 사방의 장지문을 열어젖히면 사랑채가 정자로 변신한다. 축대와 우물, 연못과 나무에서는 조선시대의 빼어난 조경술을 읽을 수 있다. 이곳이 전통 한옥 디자인의 교과서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현재 한옥 스테이를 운영 중이며, 후손이 살고 있는 안채는 출입이 불가하다.

옥연정사 : 430년 고택에 스민 정신
옥연(玉淵)이라는 이름처럼 구슬과 같은 맑은 물빛의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자리한 안동 옥연정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대가족의 살림과 사당이 있는 종택과 달리, 서애 류성룡 선생이 학문 연구와 제자를 키우기 위해 세운 곳이다. 1586년 완공된 이곳은 문간채·안채·별당채·사랑채가 ‘一’자형으로 늘어선 구조로, 밖으로는 낙동강의 절경이 펼쳐진다. 현재 사랑채인 세심재와 별당채인 원락재는 고택 체험 공간으로 쓰인다. 특히 원락재는 서애 선생이 <징비록>을 저술하던 장소로, 문을 열면 선생이 심은 소나무가 굳건히 서 있다. 지척에 자리한 류성룡 선생의 종택 ‘충효당’도 놓치지 말자.

Contributing Editor
SEOL MI 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