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WHAT A Beautiful FIGURE!

세상이 말하는 ‘아름다운 인간’에 관한 표현을 흔들어놓은 작가들

Imponderabilia, 1977/2023. Live Performance by Emma Fisher and Duarte Melo, 60minutes. Courtesy of the Marina Abramovic Archives. Photo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David Parry

실재라는 파격,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살아 있는 신체를 미술의 도구로 사용하는 퍼포먼스 아트 중에는 작가도, 관객(의 신체)도 작업의 일부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세르비아 출신의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에는 실제의 몸이 등장한다. ‘헤아리기 힘든 것’은 관객이 벌거벗은 남녀가 서 있는 출입구를 지나가는 퍼포먼스다. 미술관 측에서 이곳을 지나가기 꺼리는 관객이 있을 거라고 하자 작가는 다른 편의 출입구로 전시장에 들어가는 방법을 제안했다. 어떤 미술관에서는 휠체어 사용자가 지나갈 수 있도록 두 명의 퍼포머가 멀리 떨어져 서 있게 해달라고 작가에게 요청했다. 아브라모비치는 정말 현명한 방법은 타협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요청을 모두 수용했다. 자연이 주는 에너지의 힘에도 관심이 많은 작가는 카메라로 촬영한 퍼포먼스에 본인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교류’에서 아브라모비치는 폭풍우가 치는 날, 크리스털로 둘러싸인 금속 구조물 위에 명상하듯 누워 있다. 나무나 돌로 만든 인체 조각이 아닌 사람의 몸이 일종의 조각이 되는 순간이다.

I’m Yours, 185.74×188.6cm, Acrylic on Canvas, 2015. ©Henry Taylor.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Sam Kahn

The Dress, ain’t me, 214×182.9cm, Acrylic on Canvas, 2011. ©Henry Taylor.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Serge Hasenböhler

평등을 내포한 인물화, 헨리 테일러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인물화에 등장하는 흑인은 하인, 노예, 식민지 주민 등이 대부분이었다. 검은 피부를 지닌 사람이 평범한 인간으로 또는 권력자로 나오는 회화를 볼 수 있게 된 지 사실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미국의 아티스트 헨리 테일러의 작업에는 친구, 친척,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 운동선수, 정치인, 연예인이 등장한다. 모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 불리는 흑인이다. 그의 대형 초상화와 입체 작품에는 익살스러운 유머와 희극적 감성이 느껴지는 오브제가 포함되어 있다. “나는 백인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라는 흰색 글씨가 새겨진 타자기, 나뭇잎을 검은색 털로 대체한 커다란 나무 모양의 오브제가 그러한 예다. 지난 몇 년 동안 경찰이 살해한 흑인의 이미지를 그린 초상화는 미국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현재도 여전한 인종차별을 보여준다. 대중에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의 초상화를 제작한 작가로 유명해졌지만, 테일러는 여러 장르의 작품을 만든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업은 면밀한 조사와 날카로운 사회비판으로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테일러는 미국에서 흑인이 처한 여러 상황을 행복과 불행, 절망과 즐거움의 감정을 모두 아우르며 표현한다.

A girl 2006, Mixed media, 2007 Photo ©Marc Domage

삶의 극사실들, 론 뮤익
관객이 놀랄 정도로 커다란 크기의 아기. 전시실에 가득한 엄청난 규모의 해골. 론 뮤익은 극사실적으로 섬뜩하게 만든 조각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업에는 아이를 임신한 ‘임산부’부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죽은 아버지’까지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미술의 고전적인 주제가 담겨 있다. 뮤익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거대한 조각으로 시각화하며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성찰과 질문을 던진다. 또한 삶과 죽음을 대립적으로 보는 이분법을 극복하며 이를 인생의 순환 속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1.5m가 넘는 높이의 해골로 구성된 ‘매스(Mass)’는 덩어리, 천주교에서 미사 등 여러 의미로 해석 가능한 제목의 작업이다. 작가가 쌓아 올린 수많은 인간 두개골의 집합체는 개인의 죽음을 넘어 집단 학살과 테러, 전쟁, 질병으로 인한 죽음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출생 순간의 아기를 묘사한 ‘여자아이’는 귀여운 아기의 모습이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나고자 힘든 과정을 겪은 아기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피와 탯줄이 남아 있다. 거대한 작품 앞에 선 관객은 출생의 기적과 시련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A girl 2006, Mixed Media, Photo ©Marc Domage

반격의 초상, 신디 셔먼
신디 셔먼은 자신의 분장한 모습을 끊임없이 변형시킨다. 영화배우, 역사적 인물, 광대, 남성 등 그는 다양한 인물로 변신하며 카메라 앞에 서왔다. 사진 속의 셔먼은 관객과 시선을 마주하는 자세를 취한다. 이를 두고 전통적으로 회화에서 여성의 시선을 아래로 향하게, 작품의 다른 인물 또는 사물을 바라보게 처리하던 방식에 반기를 든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셔먼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칭하지 않는다. “신디 셔먼의 작품이 남성의 시선을 전복한다”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역사 초상화’와 ‘광대’에서 인물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기괴하게 표현되어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워질까에 집착하는 데 질렸다”라고 말했던 셔먼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비틀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믿음을 드러낸다. 최근 셔먼의 신작은 인스타그램 필터를 활용한 셀피(selfie)를 통해 자신의 초상을 태피스트리로 만드는 방식으로 전개 중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개인과 집단의 기억에 질문을 던지며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를,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Sleeping, 213.4×175.3cm, Oil Paint on Canvas, 1977. ©The Estate of Philip Guston, Courtesy Hauser & Wirth

왜곡된 덩어리들, 필립 거스턴
필립 거스턴은 50여 년 동안 자신이 목격한 불안하고 격동적인 세상을 표현하는 회화와 드로잉을 끊임없이 제작했다. 캐나다의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성장했으며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과 함께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추상화가가 되었다. 하지만 거스턴은 베트남전쟁, 큐클럭스클랜(KKK)의 흑인 폭행과 흑인 인권운동 방해 같은 사회적·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추상화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그는 폭력과 인종차별의 가해자를 상징하는 흰색 후드를 쓴 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인물과 주변의 사물이 등장하는 대형 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거스턴은 추상화에 몰입하기 이전 멕시코 벽화에 영향을 받아 벽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따라서 대형 회화를 제작하는 일이 그에게 낯설지 않았다. 핑크색 배경에 담배꽁초, 사다리, 구두, 책, 벽돌, 자물쇠 등의 사물을 자주 배치하는 거스턴의 캔버스에는 단순화된, 덩어리처럼 보이는 사람이 등장한다. 작가는 악몽 같은 주변 세계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이미지의 신체를 창조했다. 눈코입이 없거나 일부만 있는 거스턴의 인물은 개인과 정치, 추상과 구상, 유머와 비극을 연결하는 작가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반영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Editor
HAN JI HEE
Writer
AHN KYUNG HWA(아트 칼럼니스트)
이미지 제공
런던왕립예술원, 스테델레이크 미술관, 에스파스 루이 비통, 테이트 모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휘트니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