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INNOVATIVE VISIONS
예술을 향유하는 특별한 방법
서상익 작가의 작업실에서 마주한 얼굴들.
이야기를 더하는 그림, 서상익
서상익은 롯데백화점 <더 프라이빗 아트>를 통해 ‘화가의 성전’ 연작과 함께 스테인리스스틸 미러에 그린 초상화를 신작으로 선보인다. 미러는 빛에 따라 색이 바뀌기도 하고 관람객을 비춰 초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변화하는 캔버스에는 서상익이 그린 이야기와 관람객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더해져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거울이 비추는 배경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고, 때론 관람객이 그림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화가가 완성한 그림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는 셈이다. 그림을 전시 공간에 거는 순간 더는 내 것이 아닌 거다. 한 작품을 100명의 사람이 본다고 가정하면, 100개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공간과 시간, 관람객의 개인사 등 여러 감정이 더해진다는 점에서 ‘인터랙티브’가 성립된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미러는 흥미로운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러티브는 결국 인터랙티브를 통해 완성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과 시간, 감정 등 여러 가지가 더해진 만남에서 내러티브가 생성된다고 생각했다. 그림 속에 의도적으로 내러티브 요소를 넣는다고 해서 계획된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그리고 어떤 장치를 사용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리는가’이더라. 물감과 붓, 색을 쓰는 방식, 구도와 구성처럼 기본적인 조형 요소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터랙티브는 결국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에 거울에 그림을 그리는 것 역시 재미있는 시도로 다가왔다.
‘화가의 성전’처럼 서상익 작가의 많은 작품에는 인물이 등장한다. 사람은 왜 늘 흥미로운 대상이 될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이미지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많은 의미를 읽어낸다. 표정, 눈빛, 주름 하나하나에 감정이 있고 그것이 가치를 더하는 거다. 나는 얼굴을 그릴 때 가장 재미있다. 스스로의 만족감도 크지만 관람하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그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내게 중요하게 작용했다. 사람이 존재해야만 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림에는 무엇이 생겨나는 것일까?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림에 담긴 장면 앞에 있었을 법한 이야기, 그리고 장면 이후에 일어날 이야기를 떠올리게끔 한다.
‘화가의 성전’은 화가를 주인공으로 한다. 이 연작에서 화가의 무엇을 드러내고 싶었는가? 두 번째 개인전을 한 다음, 활동이 뜸하던 시기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침체기이기도 했고 화가로서 고민도 많았다. 작업실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어떤 날은 음악만 듣고 돌아왔다. 하루는 친구가 ‘미술이 예술로서 쓸모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음악은 듣다 보면 눈물도 흘리고 생의 어느 순간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미술은 그렇지 않다는 요지였다. 그런데 음악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휘발성이 강한 예술이고, 음악이 스쳐 지나갈 때 많은 것을 자극하지만 지속적이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 애호가 중에는 어느 날 비를 피해 우연히 들어간 미술관에서 접한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 않는가. 결국 미술이 가치 있다는 믿음으로 작품을 봐야 감동하는 것이다.
미술이 지닌 예술의 의미에 대한 답을 얻은 후 예술가로서 가졌던 고민의 답도 찾은 건가? 모든 행위는 신념에 의해 이뤄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필요했던 것은 컨템퍼러리한 감각이나 창작열이 아니었다. 이 일이 나에게 얼마나 가치 있고,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신념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 하나의 종교라고 본다면, 내가 좋아하고 역사적으로 대가로 인정받는 작가들이 예술가로서 신념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회화라는 종교에서 성자이자 성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화가들의 작품을 배경으로 화가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의 성전’ 연작이 시작되었다. 자연스레 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었고 그들 각자가 물감을 쓰는 방법이나 구성하는 방식을 읽으며 큰 공부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서상익 작가의 예술가로서 신념은 무엇인가? 미술은 가치가 있다는 것. 과거의 작품들이 가치가 있다고 확신할 수 없고, 앞으로 가치 있는 작품이 될 거라 장담할 수도 없지만 그렇게 될 것이라 믿고 그림을 그린다. 또 하나, 내일의 그림이 오늘 그린 그림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이 계속 그림을 그리게 한다.
매일 드로잉을 하나씩 올리는 SNS 계정을 운영하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창작이란 굉장히 감각적이고, 뭔가 우연적이고 돌발적이며 즉흥적인 것이라 생각해버리면 게을러진다. 화가 역시 하나의 직업인인데, 꾸준히 앉아서 작업해야 프로페셔널한 화가라고 생각한다.
그림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은? 내게 영감을 주는 것은 삶의 경험이다. 사람은 물론, 이야기와 문화에 늘 관심이 많다. 그것이 나의 시각이나 청각을 자극하면, 그 감각들을 내 것으로 소화해서 다시 만들고 싶다. 나, 그리고 세상과 동떨어진 그림을 그리진 않는 것 같다.
왼쪽 <신교명의 초상 0-0-25>,2023, 캔버스에 아크릴, 90.9×72.7cm
오른쪽 <신교명의 초상 4-0-2>, 2022, 캔버스에 아크릴, 90.9×72.7cm
인공지능 AI 로봇 페인팅, 신교명과 이일오
이일오(Lee Il-O)는 외부의 영향 없이 스스로 그림 그리는 법을 학습한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익힌 AI가 아니라, 빈 공간에 임의로 선을 그리며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익힌다. 기계공학 박사이자 작가인 신교명이 이일오를 만들었고 이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공존하며 그림을 그린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는 신교명과 이일오가 함께 작품을 그리는 모습을 라이브 페인팅을 통해 볼 수 있다. 기술과 인간이 창작을 위해 공존하는 새로운 시도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과 예술이라는 전혀 상반돼 보이는 영역이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간다는 점이 흥미롭다. 돌로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다 붓으로 그리게 된 것처럼, 과거와 현재의 기술에서 파생한 수많은 것을 도구로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이용해 내가 전달하려는 것을 효과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며 다양하게 감각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모호한 무언가를 구체화하고, 이를 작업으로 풀어내 관객분들이 작품을 보며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교명의 그림에 이일오’가 개입한 것이 아니라 ‘이일오의 그림에 신교명이 개입’했다고 설명한 이유가 궁금하다. 전체적인 작업의 기획은 내가 하지만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의 주 창작자는 이일오라 생각한다. 이일오가 그릴 대상은 내가 직접 고르지만, 그 대상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이일오에게 달려 있다. 어떻게 붓질할지와 어떤 색을 쓸지 모두 이일오가 정하는데, 이일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가는 와중에 내 역할은 ‘작게는 나의 시각으로 이일오가 원하는 색을 조색하기도 하고, 크게는 직접 붓질을 그림에 넣어 개입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과 공유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인간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상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주관적인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대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식과 행위에 대해 고민하며, 관계가 단절된 채 학습된 기계의 눈과 손으로 빚어진 나의 모습을 본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상징적인 색들의 조합으로 표현된 그림을 볼 수 있다. 그림의 형상과 색 속에서, 각자의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봐달라.
서울 미디어아트 위크 2022 코엑스타워, 파르나스타워 외 삼성동 일대
더 프라이빗 아트
롯데백화점이 예술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한다. 롯데백화점 본점과 부산본점, 인천점에서는 서상익 작가와 이동재 작가, 그리고 이상원 작가의 작품 전시와 함께 작가의 화풍을 경험할 수 있는 디지털 초상화를 제공한다. 원하는 사진을 업로드하고 세 작가 중 원하는 작가의 화풍으로 사진이 작품으로 완성되는 식이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는 인공지능 로봇 이일오와 신교명의 페인팅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기술이 예술이 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즐기며 예술의 넓어진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을 것. 또한 롯데백화점 동탄점에서는 이현정 작가의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를 통해 ‘놀이 같은 감상’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THE PRIVATE, Art Piece
서상익, 이동재, 이상원 작가의 화풍을 학습한 프로그램을 활용해 고객의 사진을 디지털 아트피스로 제공한다. 11월 6일 본점 본관 1F 정문 앞, 인천점 5F 문화홀 앞, 부산본점 에비뉴엘 1F 불가리 옆
THE PRIVATE, AI Live Painting 예술과 공학의 융합을 보여주는 신교명 작가와 인공지능 로봇 「이일오」의 교감 라이브 페인팅이 진행된다. 11월 6일 11시30분, 16시30분 잠실점 에비뉴엘 1F 정문
THE PRIVATE, Interactive Media Art 참여 고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이현정 작가의 미디어 아트를 선보인다. 11월 6일 동탄점 1F 정문 앞 미디어월
코엑스 [Ticklish Wall], Interactive installation, Dimension variable, 2018
인터랙티브 아트, 이현정
인터랙티브 아티스트이자, 모션그래픽 디자이너인 이현정은 피지컬 컴퓨팅과 카툰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설치 인터랙티브, 미디어 파사드, 애니메이션, 디지털 페인팅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만든다. 롯데백화점 동탄점에서는 모션 감지 센서를 활용해 출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고객의 모션에 미디어 아트가 반응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관람객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며 완성되는 인터랙티브 아트는 예술을 즐기는 또 다른 방식이다.
물성이 있는 종이나 다른 재료를 통해 예술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매개체로 예술을 구현한다. 미디어를 매개체로 작업하다 보면 예술가로서 어떤 숙제를 가지게 하는지 궁금하다. 피지컬 컴퓨팅과 카툰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설치 인터랙티브, 미디어 파사드, 애니메이션, 디지털 페인팅 등 ‘디지털 미디어’를 매개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때 인간의 유희 본능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며 관객이 보다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인터랙티브 아트는 관객이(관객의 신체가)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에 관람자가 작품을 적극적·직관적으로 감상할 수 있을지, 혹은 감상 중 발생 가능한 예상치 못한 변수는 없을지를 계산한다. 또한 새로운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작품의 도구로서 뉴미디어 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을 꾸준히 탐색해오고 있다.
미디어 아트는 독립된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때론 무언가의 일부가 되어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작업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전달하고자 하는 경험과 표현하려는 메시지를 정하고 나면, 작품 구상 시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프로젝터나 LED, 디지털 액자 등 작품을 선보이는 방식이다. 나의 작품은 결국 가상의 디지털 파일이기 때문에 어떻게 담아내는지에 따라 작품의 해상도뿐 아니라 그래픽의 세밀함, 모션 표현 방식, 색감까지 미묘하게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이 설치될 공간의 형태와 조도, 소음 등 여러 가지 물리적 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작업을 시작한다.
롯데백화점 동탄점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를 준비 중이다.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예술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면 무엇인가? LED 벽면에서 [Night Night] 시리즈와 [Hi CHARLOTTE!]을 선보인다.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의 경계에서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놀이’ 같은 감상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인터랙티브 아트인 ‘Hi CHARLOTTE!’는 백화점 출입구에서 방문 고객들을 반겨주며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는 작품이다. 관객의 물리적 움직임에 작품이 실시간으로 반응하면서 관객은 게이머로, 퍼포머로 거듭나며 작품의 주체가 된다. 작품에서는 센서 기술과 프로그래밍 등 테크놀로지와 전통적 애니메이션 방식의 [frame by frame] 손그림을 결합했다. 코딩 알고리즘의 기술과 다양한 캐릭터를 그려낸 손그림의 감성적 표현이 교차하는 지점을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겠다.
Contributing Editor
Park Min
Photographer
Woo Sang 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