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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디저트의 세계

섬세하게 완성한 파인 디저트가 줄지어 펼쳐진다.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을 먹고 싶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언제였을까? 중세시대 유럽 상류층은 밥을 눈으로 먹었나 싶을 만큼 휘황찬란한 식생활을 즐겼다. 14세기 프랑스의 생활상을 기록한 <파리의 살림안내서>에 따르면 손님을 초대한 정찬에서 짭짤한 요리와 달콤한 요리를 동시에 접대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생선 요리나 구이 요리와 함께 설탕 시럽을 입힌 플랑, 커스터드 타르트 등을 함께 내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파인 다이닝이 그렇듯 순차적으로 요리가 나오고 시작과 끝을 디저트가 장식하는 코스 형태는 19세기 러시아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으로 퍼진 방식이다. 디저트의 어원은 ‘치우다, 정리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데세르비르(desservir)’에서 왔다고 추정되는데 식사의 마지막에 테이블을 깨끗이 정리한 후 즐긴다는 어원이 무색하게 요즘 디저트는 식탁의 중심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입맛을 돋우거나 깔끔한 마무리를 위한 보조 역할이 아닌 식사 그 자체로서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디저트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한 끼 식사보다 비싼 값을 지불하고 기꺼이 한 조각의 디저트를 선택하며, 유명 파티시에 셰프가 디저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몇십만 원짜리 파인 다이닝 코스를 스스럼없이 예약한다. 오직 디저트로만 이뤄진 파인 디저트 코스를 찾아다니며 계절별로 달라지는 셰프의 창작 세계를 탐닉하는 ‘디저트 오마카세’를 즐기는 이들도 늘고 있다.
얼마 전 청담동에 문을 연 ‘엘라보레’는 파리의 유명 파인 다이닝에서 7년간 일했던 김요솔 셰프가 귀국해 운영하는 디저트 다이닝이다. 우아한 대리석 바 테이블이 기역자로 이어지고 황동 소재 주방 소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온화하면서도 모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셰프가 빚어낸 독창적인 프렌치 디저트 코스를 즐길 수 있다. 프랑스에서의 경험과 기술에 한국적인 재료를 더해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고자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밝힌 그녀의 말처럼 공간 구석구석에는 온갖 재료가 발효되는 중이다. “엘라보레는 ‘심사숙고해 구상하다, 정성을 들여 만들어내다’라는 뜻의 프랑스어예요. 요리사들마다 자신의 요리에 의미를 담잖아요. 잘 다듬어진 디저트로 손님에게 새로운 의미를 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지은 이름이에요. 셰프로서 나아가고자 하는 다짐이기도 하고요.”
첫 메뉴는 황금 가지에 각기 다른 꽃이 핀 듯 화려한 형태로 구성된 6가지 한 입 거리 아뮤즈. 샴페인 한 잔에 회화의 한 장면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아뮤즈를 하나씩 먹고 나면 땅콩호박 마카다미아 수프, 쌀꽃, 메밀 브리오슈, 팥 스파이스 브레드, 백년초 소르베, 뷔슈 드 노엘, 페코리노 감자 수플레가 연이어 등장한다. “긴 코스를 디저트로 채우는 만큼 혀가 지치지 않도록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다양한 텍스처와 온도감을 감안해 코스의 흐름을 짜고 염도, 산도, 당도의 밸런스를 맞추려 노력합니다.” 셰프의 설명처럼 전체 코스는 기승전결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피아노 소곡을 듣는 것처럼 리듬감 있게 이어진다.
올해로 7년 차 업력을 자랑하는 ‘10월 19일’은 한국에 디저트 다이닝이란 개념이 생소할 때부터 문을 열어 식사와 디저트의 경계를 허무는 세이버리 디저트 코스를 선보여온 공간이다. 이곳을 이끄는 박지현, 윤송이 셰프 부부는 최근 선릉역 인근에 새로이 둥지를 틀고 계절별로 달라지는 제철 야채나 허브 등을 활용한 디저트 코스와 단품 메뉴를 제안한다. 날씨, 음식의 온도, 식감 등을 고려해 만든 4가지 코스의 각 접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비주얼이다. 가령 ‘푸르른 소나무 숲에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추운 겨울을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첫 코스는 바질과 배로 트리 모양의 칩을 만들어 둥글게 둘렀고 그 속에 부드러운 코코넛 크림과 급속동결 시트러스, 향긋한 히비스커스 아이스를 눈처럼 쌓았다. 시각적 자극과 부수거나 입에 넣었을 때의 촉각, 거기서 발생하는 소리, 감각을 일깨우는 생경한 맛까지. 디저트 다이닝은 한 편의 공연을 보는 것처럼 은유를 여러 감각으로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즌마다 찾아오는 단골부터 노부부, 어린 학생들까지 정말 다양한 연령대가 방문합니다. 디저트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공간, 분위기, 경험 등을 함께 소비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더 편하게 오시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생소하게 여기며 그냥 넘겨버렸다면 요즘은 ‘한번 경험해볼까?’라고 생각하니까요.” 윤송이 셰프는 디저트 다이닝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 분석했다.
이제 한국 디저트 셰프들은 세계 무대로 나아가 콧대 높은 유럽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프랑스 레스토랑 가이드 <고 에 미요(Gault & Millau)>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파티시에로 파크 하얏트 파리 방돔의 김나래 셰프가 뽑히며 화제를 모았다. 최근 루이 비통 메종에 한식 셰프 4인이 컬래버레이션한 팝업 다이닝 ‘우리 루이 비통’에서는 뉴욕에서 하이엔드 디저트의 중심에 우뚝 선 리제의 이은지 셰프가 함께했는데, 그녀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 <라 리스트>가 선정한 2023 페이스트리 어워즈에서 ‘올해의 페이스트리 인재상’을 수상했다. 그는 우리 루이 비통에서 서양배와 한국배를 조합해 만든 타르트에 수정과 주스를 부어 함께 먹는 산뜻한 디저트,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연상시키는 연꽃과 연등에서 영감을 받아 프랑스의 대표 디저트 바슈랭을 재해석한 ‘연꽃 바슈랭’ 등을 선보였다. 무엇의 일부가 아닌 그 자체로 완벽한 파인 디저트의 세계. AI가 커피를 내리고 요리하는 시대가 온다 해도 테이블 위 펼쳐지는 디저트처럼 마음 깊숙이 울림을 주는 건 손끝으로 시를 짓는 셰프들의 특권일 것이다. 그들의 장소에서 우리는 행복을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Contributing Editor
LEE DAYOUNG
Photographer
KIM BORA
촬영 협조
엘라보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