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Conscious Beauty

조금씩 진일보하는 지속 가능한 뷰티에 대하여.

아름다운, 사려 깊은 뷰티
예쁘고 감각적이며 그저 ‘본업’만 잘하면 되었던 코스메틱 제품의 어깨가 요즘처럼 무거웠던 때가 또 있을까? 탄소중립 이슈가 산업 전반에서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가운데 뷰티업계의 역할론에도 초점이 맞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추해보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코스메틱 아이템 구매를 이끄는 요소는 제품력과 디자인, 가격 등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지속 가능한(서스테이너블) 방식으로 생산되었는지도 중요한 구매 포인트로 떠올랐다. 이왕이면 친환경 제품에 지갑을 연다는 이야기다. 그저 소수의 유난스러운 제스처로 치부하기에는 바람이 거세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전국 20~60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90.7%가 친환경 제품을 구입할 의사가 있으며, 응답자의 95.3%는 일반 제품보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구입하겠다고 답했다. 물론 아직까지 윤리적 소비를 할 만큼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가만히 복기해보라. “지구 온난화의 시대는 끝났다. 이젠 지구 열대화 시대다”라고 한 유엔사무총장의 선언과 늘 올해의 여름이 가장 더울 것이라고 발표하는 기상청의 경고 그리고 지난 몇 년간 피부로 경험한 이상기후가 단지 우연이었을지 말이다. 환경운동가들의 경고 메시지를 더는 묵과해선 안 된다는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뷰티 브랜드는 환경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 많은 산업 중 왜 화장품은 탄소중립 이슈의 중심에 섰을까? 화장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복잡다단한 제품 카테고리로 구성되었으며 다양한 성분, 첨가제 사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기에 시각적 풍요를 위한 불필요한 포장재와 복합 재질을 남용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런 이유로 화장품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 속에 반드시 풀어야 할 난제를 얻었다. 그러나 이제 뷰티업계는 방법과 속도 차이는 있겠지만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필(必)환경’이라는 세계관을 브랜드 전반에 적극 투영하고 있다.
토양에 해로운 농약을 쓰지 않고 물을 적게 들이며 재배한 유기농 원료를 농가로부터 공급받고 포뮬러 제조 과정에선 풍력발전 에너지를 이용하며, 단일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고 완제품이 유통되는 과정에선 친환경적 에너지원을 사용한다? 서스테이너블이란 수식어가 추구하는 이상향일 것이다. 하지만 뷰티업계가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초기 단계인 현재, 이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수행하길 바라는 건 지나친 바람이다. 지속 가능한 뷰티는 트렌드도 아니고, 일회성의 급한 불 끄기로 끝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장기적 관심과 연구,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다. 우리는 완벽한 솔루션까진 아닐지라도 유의미한 친환경 행보를 보여주는 브랜드의 제품에 지지와 응원을 보낼 필요가 있다. 이왕이면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을 구매하는 가치 소비도 계속되어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자화자찬은 않겠다.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지구에겐 한없이 가벼운 표현이기에.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선택임은 자명하다. 미래지향적 뷰티는 첨단 성분과 집약된 기능이 아니다.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나아가는 뷰티여야 한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HOURGLASS 언락드 새틴 크림 립스틱, 레드 제로 컬러 4g 6만원. 동물성 성분을 사용하지 않은 트루 비건 립스틱. 아보카도오일과 망고시드 버터가 촉촉함을 선사한다.
SUSANNE KAUFMANN 퓨리파잉 클렌징 젤 250ml 13만7천원. 오스트리아 알파인 식물군을 현지 조달한 내추럴 클렌징 젤. 원료부터 패키지까지 최대한 단순하게 담아냈다.

(왼쪽부터) CAUDALIE 비노썬 베리 하이 프로텍션 크림 40ml 3만8천원. 해양생태계에 유해한 성분인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를 사용하지 않은 ‘리프 세이프’ 인증 자외선 차단제.
ANESSA 퍼펙트 UV 선스크린 스킨케어 밀크 60ml 3만7천원. 유해 물질을 배제한 마일드한 포뮬러의 ‘선(sun)스테이너블’ 자외선 차단제.

L:A BRUKET 리플레니싱 세럼 30ml 12만원. COSMOS 인증 원료를 사용한 자연 유래 비건 세럼.

더욱 친밀해져야 할 클린 성분
서스테이너블 화장품의 원료는 단지 인간을 위한 효용성만을 따져서는 안 된다. 지구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치밀하게 계산되어야 한다. 친환경적인 성분을 택하기로 결정했다면 다섯 가지 핵심 요소 ‘안정성, 효능, 원산지, 지속 가능성, 투명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인체에 유해하거나 자극적인 화학 성분은 배제해야 하며 원물은 공정무역거래 원칙에 따라, 또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채취해야 한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크루얼티 프리 제품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물 절약 역시 뷰티업계의 또 다른 도전 과제다. 화장품은 과도한 물 소비의 주범이었다. 하지만 화장품 성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정제수를 배제하고 소량의 오일을 활용하거나 동결 건조해 파우더화하는 식의 노력은 수자원 보호로 이어질 수 있다. 물을 제거하면 화장품 무게가 줄어들고 이를 담는 용기나 운반 과정이 축소되며 탄소 배출량도 줄어든다. 그렇다면 클린한 성분이란 뭘까? 한두 가지의 조건으로 정의 내리기 힘든 질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그린 워싱 제품을 솎아내며 이런저런 요소를 모두 따지자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렇다면 비콥(B corp) 인증 마크를 체크해보자. 비콥 인증은 기업의 윤리적 책임, 탄소 상쇄, 순환 경제 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해 받는 까다로운 검증으로 클린 뷰티의 종합지표 같은 것이니 참고할 것. 과거 친환경 제품에 입문할 땐 ‘흐린 눈’을 할 수 없는 명백한 진입장벽이 존재했다. 아쉬운 발림성과 부드러움, 풍부함의 부재 같은 것이다. 많은 데이터와 연구, 자본이 쌓이며 클린 화장품들은 분명 진일보했지만 화학 유화제와 실리콘으로 점철된 제품이 주는 제형적 만족감에는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친환경 성분은 자연 생태계를 위함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피부에도 이롭게 돌아온다. 결국 환경과 나의 삶이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클린 성분과 친밀해지고 화장대를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왼쪽부터) CHANEL N°1 De Chanel 레드 까멜리아 세럼 100ml 28만6천원. 레드 까멜리아 재배부터 포뮬러 생산, 패키지까지 모든 단계에서 환경을 고려한 세럼. 바이오 소재 함유 패키지와 100ml 대용량으로 탄소 발자국을 줄였다.
SULWHASOO 퍼펙팅 립 컬러 3g 4만5천원. 흙으로 백자를 빚어내는 과정 속의 조형적 미가 담긴 립스틱의 패키지는 PCR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했다. 설화수는 패키지에 사용되는 재활용 소재를 2030년까지 30% 확대하는 목적으로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갈 패키지
가볍고 저렴하며 가공성이 좋아 복잡한 디자인의 형상도 어렵지 않게 대량생산할 수 있다. 플라스틱의 수많은 장점 중 극히 일부다. 하지만 모든 장점을 덮고도 남을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이 장시간 자연에 쌓인다는 점이다. 이는 바다 생물들의 소화기로 흡수되어 생태계를 망치고,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인류의 몸에 조용히 잠식한다. 소각이나 매립 등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호르몬도 골치다. 다행인 것은 많은 국가들이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맺는 등 전향적 태도로 임하고 있다는 점.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의 32%를 차지하는 중국은 2025년까지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규제 정책을 내놓았으며, 프랑스도 2025년부터 재활용이 불가한 스타이렌 계열의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에 뷰티업계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패키징 연구에 더욱 몰두하고 있다. 친환경적 패키지는 환경보호와 자원 절약의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해야 하며, 폐기 후 다시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재활용 플라스틱(PCR) 사용은 물론이다. 최근엔 산업 생분해(PLA)와 해양 생분해(PHA)를 혼합한 콤파운딩 소재의 화장품 용기가 상용화되는 등 플라스틱도 점점 바른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단일 소재로 이뤄져야 업사이클링이 용이하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가령 플라스틱과 유리, 고무 소재 스포이트가 혼합된 복합 용기는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샴푸나 보디 제품의 금속 스프링 펌프 역시 ‘빌런’. 최근 금속 스프링을 제거한 단일 소재 펌프를 사용한 제품이 점점 늘어나는 점은 몹시 고무적이다. 리필이 가능한지 여부도 절실하다. 재활용을 통해 선순환되기까진 복잡다단한 조건이 있지만 말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플라스틱을 덜 쓰는 것이다.

(왼쪽부터) ISSEY MIYAKE 로디세이 솔라 바이올렛 EDT 150ml 11만4천원. 생명의 원천인 물에서 영감받은 향기. 플라스틱 사용을 배제하고 100% 우드 소재 캡을 활용했으며 벨기에 바이오리우스(Biorius) 비건 인증을 획득했다.
VALMONT 핸드 24 아워 75ml 13만원. 환경호르몬 등 유해 물질 발생 위험이 없으며 100%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단일 소재 PP 패키지를 사용한 럭셔리 핸드크림.

쓰레기의 완벽한 미래, 업사이클링
성분부터 패키지, 마케팅까지 프로세스 전반에 걸쳐 업사이클링을 통해 친환경적으로 나아가려는 노력들이 엿보인다. 구찌 뷰티의 웨어 마이 하트비츠 EDP는 업사이클링 알코올 100%를 담은 최초의 향수다. 산업 활동으로 대기에 방출되는 탄소를 포집하고 정제하는 기술력으로 완성된 것으로 전통적 알코올 생산 방법보다 물 소비와 농경지 파괴를 줄일 수 있다. 버려질 운명인 못난이 농산물을 업사이클링하는 ‘푸드 리퍼브’도 점점 지분을 넓혀가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수확량의 32%는 맛과 향, 영양분은 똑같으나 시각적인 상품성이 떨어지는 흠과로 분류되어 대부분 폐기 과정을 밟는다고. 국내에선 LG생활건강이 흠과 활용에 앞장서고 있으며, 현대약품의 기능성 스킨케어 브랜드 랩클도 착즙되고 남은 오렌지와 레몬의 과피를 발효한 업사이클링 원료를 도입했다. 희녹 역시 편백나무의 훼손 없이 가지치기 과정에서 얻어내거나 떨어진 나뭇가지와 잎만을 활용해 원액을 추출하고 있는 착한 브랜드. 환경오염의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브랜드들의 팝업 스토어 후 버려진 폐자재를 재활용하기도 한다. 평균적으로 팝업 스토어에서 처분되는 폐기물은 1톤. 팝업 스토어의 폐기물은 업사이클링 아티스트 그룹 ‘아르뉴에’와의 협업으로 설치미술 작품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CLARINS 토닉 바스 & 샤워 컨센트레이트 200ml 4만원, 200ml 3만2천원(리필). 2025년까지 100% 재활용 가능한 패키지와 30% 탄소 발자국 감소를 목표로 하는 클라랑스. 재활용 플라스틱 용기와 에코 리필로 구성되었으며 공병 반납 시 포인트 적립을 제공한다.
POLA 화이트샷 페이셜 세럼 25ml 17만5천원. 바이오매스 페트를 이용해 화석연료 보존과 이산화탄소 감소에 기여한 제품 용기. 또 엄격하게 관리되는 산림에서 재배한 목재로 만들어진 인증 종이를 사용한다.

사회 공헌이 새로운 럭셔리인 시대
비영리 환경보호 단체만이 앞장설 일은 아니다. 범지구적인 마인드로 진정성 있는 공헌 활동을 이어가는 뷰티 브랜드들도 있다. 클라랑스는 글로벌적으로, 작게는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중요성을 알리는 이 구역의 선구자. 대학생 서포터즈를 선발해 나무 심기, 가든 조성, 플로깅 등을 진행하며, 매년 5월 더블세럼 구매 시 나무 포인트를 적립해 2023년도엔 경북 울진 산불 피해 지역에 소나무 4000그루를 식재했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항공을 통한 제품 수입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도 박수를 보낼 대목이다. 겔랑은 2011년부터 벌 보호 프로그램을 통해 15개의 파트너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벌은 환경의 파수꾼이자 겔랑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겔랑 하우스는 유엔이 시작한 세계 벌의 날, 매년 100만 유로 이상을 모금해 벌 수호를 위한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이 외에도 지구 온난화로 파괴되는 빙하 연구를 해오고 있는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을 후원하는 라프레리, 2006년부터 지금까지 멸종위기 동식물의 위험성을 알리고 제품 판매 수익금 일부를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는 샹테카이 필란트로피 캠페인까지! 그저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이 브랜드들의 사회 공헌 행보에 관심을 갖고 응원을 보내자. 이젠 사회 공헌이 진정한 럭셔리인 시대다.

우리의 크고 작은 실천이 모여
우리가 직면한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는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도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젠 개인의 일상 속 변화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 진정한 ‘지속 가능한 뷰티 라이프스타일’은 소비자의 손끝에 달렸다. 제품을 구매할 땐 자신만의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실행하자. 생분해 플라스틱과 포장을 줄인 제품을 구매하는 것, 대용량 제품을 선택해 폐기물 배출을 줄이는 것이 그 첫 번째. 시트 마스크 대신 크림 타입 마스크를 쓰는 것, 고체 화장품을 선택하는 것 또한 지구를 존중하는 실천이다. 물 절약은 물론 부피가 작고 가벼워 과도한 포장으로부터도 자유로울 테니까. 그리고 과잉의 시대에 하나의 제품으로 다양한 목적을 수행하는 멀티유즈 제품도 일상 속 친환경으로 가는 길이다. 립스틱과 블러셔, 아이섀도 등을 모두 합친 멀티 스틱, 샴푸와 보디 워시 기능을 겸해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용하는 솝 등 알고 보면 멀티유즈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왼쪽부터) BELIF 슈퍼나이츠 멀티 비타민 립세린 15ml 2만5천원. 입술부터 건조한 피부 국소 부위 어디든 보습과 윤기를 더하고 손상피부 장벽을 개선하는 멀티 밤.
MAKE UP FOR EVER HD 스킨 올인원 페이스 팔레트 26.5g 14만원. 파운데이션, 컨실러, 블러셔, 하이라이터 등을 하나의 팔레트에 담은 멀티 팔레트.
DAVINES 위 스탠드 포 리제너레이션 헤어 앤 바디 워시 바 100g 2만3천원. 워터 프리 과정으로 생산된 솝으로 유전자 변형이 되지 않은 녹색 등급 천연 계면활성제와 천연 방부제를 활용한 솝.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용 가능하다.
CHANEL 까멜리아 립 앤 치크 밤 6.5g 6만3천원. 피부에 녹아들 듯 부드럽게 발리는 멀티 밤. 입술과 볼을 생기 있게 물들이고 보습력을 더한다. SU:M 37 스킨-스테이 모이스처 립세린 15ml 3만원. 립밤과 립마스크의 장점을 결합한 제품. 12시간 지속되는 고보습 효과로 입술과 건조한 피부를 보호한다.

Contributing Editor
PARK SEMIE
Photographer
YOON BORAM, PARK JIHONG
MODEL
엘라
HAIR
윤성호
MAKEUP
공혜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