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The Natural Wine Makers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의 이야기.

장 이브 페롱의 포도밭에서 바라다보이는 몽블랑의 만년설.

실비 오쥬로의 포도밭에 놓인 와인.

내추럴 와인의 무한한 가능성
이산화황을 쓰지 않은 와인은 양조학적 측면에서는 불가능한 와인이다. 이산화황을 쓰지 않으면 발효가 잘못되어 식초가 되어버리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양조학을 공부하고 관련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내추럴 와인을 만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언제나 예외적인 사례는 존재한다. 도멘 장 이브 페롱(Domaine Jean-Yves Péron)을 운영하는 와인메이커 장 이브 페롱은 바로 이 예외에 해당한다. 그는 보르도 양조대학에서 양조 학위를 받은 후에 이산화황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완벽한 내추럴 와인을 만들고 있다. “그동안 여러 실험을 해오며 이산화황을 넣지 않은 와인의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쉬운 길도 있지만 저는 이산화황을 쓰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는 쪽의 양조가 훨씬 재미있어요.”
알프스의 만년설이 보이는 사부아 산자락에서 2003년부터 와인을 만들고 있는 그는 일찌감치 지구온난화 현상이 포도밭에 미칠 영향을 걱정했고, 산으로 둘러싸이고 해발고도가 높은 사부아의 포도밭이라면 온도 상승에 따른 알코올 강화 등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여름이 일찍 찾아오고 더위가 오래갈 때는 밸런스가 좋은 포도를 얻기 어렵다. 적당히 뜨겁고 서늘한 기후가 교차해야 와인을 만들기 좋은 포도를 얻을 수 있다.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완전히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느지막이 수확한 포도로 만든 그의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고 미네랄은 넘친다. 하지만 냉해를 피하기는 힘들다. 그리하여 몇 년 전부터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생산자들에게 포도를 추가로 사들여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다양한 테루아 와인을 만들고 싶었는데, 피에몬테의 포도가 아주 재미있기도 하거든요.” 동그란 뿔테 안경 너머의 그의 눈빛은 아직 세상에 재미난 일이 더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왼쪽) 와인 생산자 장 이브 페롱.
(오른쪽) 개화 직전의 포도나무.

(위쪽) 발효 후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와인들.
(아래쪽) 장 이브 페롱의 다양한 와인들.

저널리스트에서 와인 생산자로
도멘 실비 오쥬로(Domaine Sylvie Augereau)를 운영하는 실비 오쥬로는 네 권의 내추럴 와인 관련 책을 집필한 프랑스 내추럴 와인계의 대모이자 2016년부터 직접 내추럴 와인을 만들어온 생산자다. 또한 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소뮈르에서 매년 2월 초에 열리는 라 디브 부테이유(La Dive Bouteille)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내추럴 와인 페어를 이끌고 있다. 그녀는 내추럴 와인 생산자의 시대를 둘로 나눈다. 첫 세대는 세계대전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화학제, 제초제, 비료 등을 불신하며 예전 방식을 고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양조학이라는 신개념의 도입으로 평준화되고 잘 팔리는 와인, 쉽게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들과 대적할 수 없었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와인을 만들뿐이었다. 그다음 세대는 첫 세대가 닦아놓은 길을 비교적 수월하게 걸어가며 인기 좋은 내추럴 와인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들이다. 내추럴 와인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퍼져가는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있는 실비 오쥬로가 보는 내추럴 와인의 미래는 어떨까? “시장은 폭발하고 점점 더 많은 새로운 생산자들이 유입되지만 오히려 고요하게 느껴져요. 새로운 세대, 새로운 고객들은 좀 더 솔직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와인을 대하는 듯해요. 하지만 ‘내추럴 와인이니까’라는 말로 결점을 묵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더욱 정교하게 잘 만든 내추럴 와인만 받아들이는 시장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와인에 대한 글을 쓰려면 일단 와인 양조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2년에 걸쳐 프랑스 전역의 와이너리를 돌다가 결국 와인 생산자로서 인생의 또 다른 장을 연 그녀의 와인은 첫해보다 두 번째 해가 좋았고, 그다음 해가 또 더 좋았다. 실비 오쥬로는 생산자로서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위쪽) 실비 오쥬로의 양조장 뒤뜰.
(아래쪽) 양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 와인 생산자 실비 오쥬로.
(오른쪽) 포도 껍질을 침용해 만든 스킨컨택 와인 퓔프.

시적인 와인
원재료를 살린 자연스러운 음식을 추구하는 코펜하겐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노마(NOMA)는 전 세계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노마의 와인 리스트에 올라가면 곧바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훌륭한 내추럴 와인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 레스토랑의 소믈리에로 일했던 앤더스 프레데릭 스틴(Anders Frederik Steen)은 내추럴 와인을 서비스하는 직업에서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로 변모했다. 프랑스 아르데슈 지역의 내추럴 와인 선도자 제랄드 우스트릭(Gérald Oustric)이 내어준 포도와 양조 시설을 이용해 만든 앤더스의 와인 ‘피치(Peach)’는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 와인의 원래 이름은 ‘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each’. 특별한 와인 네이밍은 그와 아내가 함께 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을 먹자(Let’s eat the world we want to live in)’ ‘순수 마술, 화학제품 아님(Pure magique pas de chimiques)’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가야만 했다(…and suddenly she had to go)’ 등의 문장들은 시적이고 철학적이며 가끔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그 안에 와인에 대한 진실과 유머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앤더스는 내추럴 와인을 만들며 기록한 8년간의 메모들을 책으로 펴냈고, 이는 최근 한국에 <우리의 정원에는 시가 자란다>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역시나 시적인 제목이다. “이름은 와인의 캐릭터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져요. 저는 일정한 캐릭터의 와인을 만드는 데 관심이 없어요. 지난해와 똑같은 와인을 만들려고 해도 해마다 기후가 다르고, 포도 숙성 정도의 차이도 있고, 산미와 당도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데 왜 매년 똑같은 와인을 만들어야 하죠? 전 좀 더 자유롭고 싶어요. 그래서 다양한 포도에 나만의 상상력을 더해 해마다 다른 와인을 만들려고 해요.”

와인 생산자 앤더스 프레데릭 스틴.

앤더스의 포도밭 전경.

와인으로 노는 법
도멘 갸느바(Domaine Ganevat)를 이끄는 장 프랑수아 갸느바(Jean-François Ganevat)는 쥐라의 내추럴 와인 무대에서 가장 독보적 존재감을 뿜어내는 생산자다. 새롭게 내추럴 와인을 만들겠다는 젊은 생산자들을 독려하고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쥐라에서 부르고뉴식으로 와인을 생산한다. 이는 오랜 부르고뉴 와인 양조 경험에서 온 것이다. “부르고뉴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화학제품 통에 해골이 그려져 있었어요. 어느 날 누군가가 그걸 지적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죠.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었어요.” 그래서 그는 쥐라로 돌아와 와인에 사용하는 모든 화학제품을 미련 없이 버렸다.
2014년부터는 여동생과 함께 네고시앙(직접 재배한 포도가 아닌 구입한 포도를 이용해 와인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사업자를 이르는 명칭)을 설립해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 냉해, 병충해, 초파리 피해 등등 계속되는 악재로 인해 포도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또한 만들어보고 싶은 와인이나 마시고 싶은 와인을 자유롭게 제조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네고시앙을 시작했다. 그의 와인은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때그때 본능적으로 퍼즐을 맞추듯 새로운 와인을 만들어낸다. 마음에 드는 포도를 구입한 뒤 말 그대로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그의 애칭인 팡팡(Fanfan, ‘아이 같다’는 뜻의 프랑스 유아어)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도멘 갸느바의 와인 컬렉션에는 오래된 와인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와인들은 특별한 행사용이냐고 묻자 대부분 “친구들하고 마신다”는 답이 돌아왔다. 뭐든 아낌없이 퍼주는 장 프랑수아다운 답이었다.

(위쪽) 장 프랑수아 갸느바의 와인 숙성실.
(아래쪽) 갸느바의 다양한 와인들.

(왼쪽) 와인 생산자 장 프랑수아 갸느바.
(오른쪽) 갸느바의 다양한 와인들.

Editor
KIM JISEON
Writer
CHOI YOUNGSEON(비노필 대표)
Photographer
LIM JEAN, KIM ZIN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