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

식탁 위의 풍류

여름날, 전통주와 한입거리 음식의 페어링을 즐기는 시적인 한 상

독야청청의 아름다움
청렴한 선비의 정신을 진에 녹였다. 토끼소주에서 만든 한국식 드라이진 ‘선비’는 싱그러운 주니퍼베리를 베이스로 고수와 레몬그라스, 시트러스가 풍성하게 조화를 이루는 개성 강한 진이다. 여기에 오미자와 솔잎, 천혜향 같은 한국적 터치를 가미해 화사하고 시원한 맛을 냈다. 부드럽게 매운맛 뒤로 새콤달콤한 오미자 풍미가 치고 올라오기에 치즈를 뿌려 구운 콜리플라워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음식과 궁합이 좋다. 진토닉, 마티니로 즐기기에 제격이고 캄파리를 더해 네그로니를 만든다면 여름날 식사의 포문을 열어줄 개운한 한 모금이 될 것이다.

투명하고 묵직한 한 방
브리즈앤스트림 양조장에서 만든 ‘번트 메밀 40’은 단단하고 날 선 향이 계곡물처럼 리듬감 있게 치고 나오는 술이다. 설악산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내린천이 흐르는 청정 지역에 자리 잡은 증류소에서 태어난 불맛 소주. 강원도 지역 농산물인 100% 춘천 햇메밀을 볶아 직화 증류로 내린 뒤 1년간 항아리에 숙성시켜 만든다. 볶은 메밀의 스모키한 풍미가 묵직하게 번지고 스파이시하며 고소한 향이 도드라지는 가운데 무르익은 체리 향도 얼핏 스친다. 에어링 후 니트로 즐기거나 살짝 데워 마시면 더욱 풍부한 향을 느낄 수 있다. 녹진한 브라우니를 곁들이면 칼칼하고 얼얼해진 혀를 달래줄 것이다.

시가 되는 시간
‘일엽편주 탁주’는 시큼하고 요구르트 같은 식감에 쌉싸름한 여운이 오래 감도는 술이다. 고소한 곡물 향과 청량한 신맛, 은은한 과실 향이 경쾌하고 부드럽게 번진다. 농암종택 양조장에서 전통 누룩을 이용해 정제나 여과 과정 없이 자연 발효로 만들어 쌀 본연의 깊은 향을 느낄 수 있다.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처럼 텁텁하지 않고 깔끔한 목 넘김이 좋아 여름날 가볍게 마시기에 제격이다. 앤초비와 문어, 올리브를 꽂은 핀초, 살라미처럼 짭조름한 샤르퀴트리를 곁들이면 시적인 한 상이 완성된다.

향긋한 만남
‘추사 40’은 추사 김정희가 태어난 충남 예산의 사과를 증류해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사과 증류주다. 산뜻한 사과 향과 오크의 깊은 풍미, 은은한 플로럴 뉘앙스가 긴 여운을 남긴다. 한 병에 사과 20개 이상이 들어가는 만큼 숙성 사과의 풍부한 맛과 빛깔이 진하게 드러나며 달콤한 바닐라와 초콜릿의 캐릭터도 느껴볼 수 있다. 복합적인 향미를 상기시킬 수 있는 진득한 식감의 브리 치즈나 쿰쿰한 고트 치즈, 담백한 크래커와 함께 온더록으로 술이 열리는 과정을 천천히 음미해보길. 사과청을 더해 하이볼로 마시면 청량한 감칠맛이 피어나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다.

Contributing Editor
LEE DAYOUNG
Photographer
LEE HYUNSEOK
Food Stylist
김보선(Studio Ros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