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MASK OF DUST
니콜라스 파티가 창조한 신비로운 환영의 세계 속으로
뒤) Nicolas Party, ‘Tree Trunks’, 2024, soft pastel on wall, 380×908cm, Courtesy of the Artist ©Nicolas Party (앞) Nicolas Party, ‘Portrait with Mushrooms’, 2019, soft pastel on linen, 149.9×127cm, Private Collection ©Nicolas Party. Photo: Jaean Lee
프리즈 서울 2024에서 최고가로 판매된 작품 중 하나는 스위스 작가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의 ‘커튼이 있는 초상화’다. 선명한 색과 단순한 구성, 생경한 이미지가 어우러진 니콜라스 파티의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신비로움’일 것이다. 가벼움과 심오함, 유머와 진지함, 학구적 태도와 낭만적인 상상력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고유한 매력을 지니고 있고, 니콜라스 파티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현재 호암미술관에서는 니콜라스 파티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전시 <더스트>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니콜라스 파티의 주요 회화 작품들과 신작 회화 20점,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파스텔 벽화 5점 등을 한국 고미술 작품과 함께 선보인다. 니콜라스 파티에게 미술사는 영감의 근원이다. 고대부터 근현대를 아우르는 미술사의 다양한 양식을 자유롭게 참조하며 자신만의 독자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미술사 안에서도 잠시 동안 유행하고 잊혀진 파스텔화를 소환해 풍경, 정물, 초상 같은 회화의 전통 장르를 재해석한다. 전시 제목인 ‘더스트’에는 공기 중으로 쉽게 흩어지는 파스텔이라는 재료의 특성이 담겨 있다. 니콜라스 파티는 파스텔화를 ‘먼지로 이루어진 가면(Mask of Dust)’이자 화장과 같은 환영으로 여긴다. 그는 “쉽사리 공기 속 먼지가 되어버릴 수 있는 예술 작품에는 시적인 측면이 있다”라고 말한다.
Nicolas Party, ‘Waterfall’, 2024, soft pastel on wall, 546×389cm. Courtesy of the Artist ©Nicolas Party. Photo: Jaean Lee
니콜라스 파티의 작품이 파스텔로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 기억이 있어요. 연약한 재료로만 느껴지는 파스텔이 만들어내는 강인한 생명력을 체감하는 계기였어요. 파스텔이라는 재료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전에는 주로 유화 작업을 했는데, 유화는 건조되는 시간이 느려서 참을성 없는 저로서는 견디기 힘들었어요. 언제든지 덧칠해 다시 그릴 수 있다는 속성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작업이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죠. 2013년에 피카소의 작품을 본 것을 계기로 파스텔 작업을 시작했는데, 색을 레이어드할 수는 있지만 덧칠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작업 속도도 빨라졌고요. 무엇보다 파스텔이라는 재료를 연주하는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파스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동시대 예술가 중에서는 파스텔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자연스레 파스텔의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어요. 미술사에서 파스텔이 인기 있는 재료였던 기간은 60여 년에 불과해요. 유럽에서는 18세기 로코코 시대에 여성 화가 로살바 카리에라를 중심으로 파스텔 초상화가 유행했는데, 그 시대에는 두꺼운 화장으로 얼굴을 치장하는 것이 보통이었어요. 그런데 파스텔과 화장품의 안료가 동일했다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파스텔을 얼굴에 칠하면 화장이 되고, 그림으로 그리면 작품이 되는 것이죠. 제 작업 또한 화장을 하듯이 일종의 환영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장생과 불멸의 염원을 담아낸 ‘십장생도 10곡병’, 김홍도의 ‘군선도’ 속의 다양한 상징을 샘플링해 팔선(八仙)을 형상화한 신작 초상화 8점을 선보였어요. 초상화 작업은 보통 어떻게 진행하나요?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파스텔이라는 매체와 화장, 그리고 로코코 시대 사이의 연관성을 전혀 알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텔로 초상화를 그리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그림 속 인물들에게 화장을 시킨 것이었어요. 1년 반 정도가 지나서야 파스텔과 화장의 연결을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제 초상화 작업은 앞에 앉아 있는 특정 대상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캐릭터를 표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 사람의 모습을 실제와 가깝게 표현하고자 했던 로마 시대 초상화와는 다르게 그리스 시대의 초상화는 굉장히 이상화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더 멀리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비슷하게 생긴 일련의 얼굴들을 볼 수 있죠. 이를 현재로 가져오면 AI가 생성한 얼굴이나 디지털로 변형한 얼굴, 성형수술로 정형화된 얼굴로도 연결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그린 초상화 속 인물은 관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투과해서 그 너머를 바라보는 인상을 줍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환영이나 유령의 얼굴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어요. 이는 오늘날 기술이 변형시키는 얼굴과도 맞닿아 있을 거예요. 작품을 통해 디지털 판타지 세계의 영혼이나 유령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그로부터 무엇이 나올 수 있는지 탐구하려 합니다.
(왼쪽) Nicolas Party, ‘Insects’, 2019, soft pastel on pastel card, 75.2×55.7cm, Private Collection ©Nicolas Party. Photo: Adam Reich.
(오른쪽) 니콜라스 파티의 포트레이트. Photo: Jaean Lee
고전적 작업 방식을 이어가는 예술가의 작업에 기술은 어떠한 영향을 미치나요? 또한 AI 같은 기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기술은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고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술과 무관한 예술가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작품을 위한 리서치 과정만 해도 기술을 통해 방대한 자료에 접근하기에 현대의 모든 예술가는 기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죠. 다만 저는 AI를 이용한 이미지 생성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습니다. 예술이 계속해서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이유가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찌 보면 파스텔도 과거 사람들이 동굴에서 벽화를 그리던 석탄과 크게 다르지 않죠. 저는 예술가로서 기술의 발전보다는 두려움, 사랑, 폭력성 등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호암미술관의 로비 계단 위에 배치된 붉은 ‘폭포’의 장대하고 기이한 풍경이 인상적이었어요. 전시장 곳곳에서도 깊은 동굴이나 신비로운 산, 잿빛 구름 등의 자연물을 마주하게 되죠. 이처럼 전시의 근사한 무대가 되어주는 벽화 역시 파스텔로 작업했기에 전시가 끝나면 ‘공기 속 먼지’로 사라진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소멸의 속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 벽화 작품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존재하죠. 마치 여름에 잠깐 울다 생을 마감하는 매미처럼 3~4개월 동안 파티를 하고 사라집니다. 저는 사라질 예술 작품이나 물건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박물관에 가면 과거의 물건을 보존하려는 인류의 노력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압박감도 느껴요. 모든 국가가 가능한 한 과거를 보존하려 하죠. 예술가들이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작품은 영원히 남는다’인데, 꽤 부담스러운 말이에요. 지난해 만든 작품이 형편없다고 생각되어도 파괴할 수는 없죠. 그 작품이 이제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정된 시간 동안만 존재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안도감을 주기도 해요. 이런 접근은 때때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게 해줘요. 벽화 작업을 할 때는 캔버스 위에서는 하지 않은 시도를 하기도 하죠. 벽화의 덧없는 속성은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문화, 역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탐구하는 데도 도움이 돼요. 제 작업에서 자주 다루는 주제 중 하나가 도덕성과 불멸성인데, 벽화는 이러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벽화 작업을 위해 6주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고 들었어요. 전시가 열리는 도시에 이렇게 오래 머무는 예술가는 드문데, 한국에서 작업을 하며 어떤 경험을 했나요? 여행객이 아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으로서 현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새로운 나라와 문화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작업을 위해 머물렀던 용인이라는 도시가 서울과 얼마나 다른지도 느꼈고요. 또한 저는 작업을 하면서 오디오 북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비롯한 여러 한국 문학 작품을 들었어요. <소년이 온다>를 통해 1980년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과 통찰을 얻었어요. 아내가 소설가라서 저 역시 소설을 좋아하고, 소설이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매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번에도 소설을 통해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어요.
(왼쪽 위부터)
Nicolas Party, ‘Portrait with Celadon Ewer’, 2024, soft pastel on linen, 150.1×110cm
Nicolas Party, ’Portrait with Peaches’, 2024, soft pastel on linen, 150×109.9cm
Nicolas Party, ‘Portrait with Two Dogs’, 2024, soft pastel on linen, 150×110cm
Nicolas Party, ‘Portrait with Deer’, 2024, soft pastel on linen, 150.1×110.1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Hauser&Wirth ©Nicolas Party. Photo: Adam Reich
작품을 전시하는 기관의 소장품이나 해당 지역의 미술사를 연구하는 등 기획자 역할을 자청하며 전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큐레이션에 참여하는 것은 이제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되었어요. 특히 이번처럼 규모가 있는 전시를 기획할 때는 제 작품만을 전시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몇 년 전 LA의 하우저앤워스에서는 제 작품과 함께 17세기 정물화를 선보인 바 있어요. 이처럼 다른 작가의 작품을 함께 배치하는 것이 전시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전시의 맥락을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이 저에게 큰 즐거움을 줍니다.
이번 전시장에서는 동굴을 그린 벽화 앞에 조선시대에 왕손의 태를 보관한 ‘백자 태호’를 놓는다거나 본인의 풍경화와 조선 18세기 ‘십장생도 10곡병’을 함께 배치하는 등 신선한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고미술품을 조사하고 연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을 발견했나요? 전시에서 제 작품과 한국의 고미술품 간의 대화를 만들어나가고자 했기에 지난 몇 년 동안 뮤지엄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준비했어요. 무엇보다 고미술품을 선정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한국 미술에 대한 제 지식이나 연구가 제한적이라서 이번 전시를 기획한 곽준영 큐레이터에게 많은 도움을 얻었죠. 이를테면 처음에 제가 제안한 달항아리는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작품이라 ‘백자 태호’가 전시와 더 잘 어울릴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어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정말 역동적이었어요. 전시 오프닝 며칠 전에 1층에 있는 두 개의 석조 해태상을 전시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한 것처럼요. 마지막까지 디스플레이와 관련해 많은 조정을 해나갔고, 결과물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뒤) Nicolas Party, ‘Cave’, 2024, soft pastel on wall, 380×908cm, Courtesy of the Artist ©Nicolas Party
(앞) ‘백자 태호’, 조선, 백자, 41×25.3cm,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회장 기증 Photo: Sangtae Kim
고미술품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예술가에게 주어진 시간은 부족하죠. 그렇기 때문에 전시를 준비하면서 본능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을 텐데, 이성과 본능 중 어느 쪽을 더 믿는 편인가요? 예술가는 여느 직업인들과 달리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어요. 그래서 시간을 핑계 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본능에 집중해서 작업하고, 스스로를 놀라게 하는 작업을 좋아해요. 이를 통해 작품에 담아내는 자유로움, 해방감, 즉흥성 같은 것들이 전시를 보러 오는 관객에게도 전해진다고 믿어요. 상당 시간 연구를 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에 내는 작가도 있지만, 저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스튜디오에서 그림 그리기에 집중하며, 캔버스에 무엇이 펼쳐질지, 어떻게 스스로를 놀라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어요.
당신의 성장 과정에서 미감이나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경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스위스는 한국처럼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산의 풍경에서 많은 미술 작품과 문화, 소설 등이 탄생하죠. 저 역시 어렸을 때 산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지금도 바다처럼 단순한 풍경에서는 편안함을 느끼지 못해요. 산처럼 다양한 환경을 더 선호하고 끌리는 경향이 있죠. 또한 증조할머니는 전문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많은 그림을 그렸어요. 오래된 가구에 다양한 인물과 동물, 풍경 등을 매우 정교하게 그렸죠. 어릴 때 그 그림들을 보고 자라면서 예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한 부모님과 함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을 자주 방문했는데, 이렇게 예술을 향유한 경험이 제 정체성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모든 경험은 서서히 축적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거쳤죠.
지금 본인의 주요 화두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멸종과 불멸 간의 대비와 긴장을 담아내려 했어요. 저는 다양한 종의 운명과 멸종 동물, 자연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고, 인류가 멸종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살펴봤어요.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는 공룡을 그린 작품이 포함되어 있는데, 한때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이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존재라는 것이 믿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요. 20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사고방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죠. 이전에는 다윈의 이론이 지배적이었고, 공룡 같은 종이 지능이 떨어지거나 너무 거대했기 때문에 사라졌다고 믿었어요. 그러나 1990년대 말에 운석 충돌 같은 우연한 사고로 많은 종이 멸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인간의 활동이 많은 종의 멸종을 초래했다는 것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요. 이제 우리는 언젠가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피라미드처럼 영원할 것 같아 보이는 것들도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죠.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바꾸어놓았어요. 자멸의 길을 초래하고 있는 인류의 행보에 대한 다양한 감정과 두려움이 이번 전시에 담겨 있습니다.
Editor
KIM JISEON
Photographer
LEE JA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