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CLASSIC ICONS

개인의 기억과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담긴 상징적 피스들

CHANEL 클래식한 디자인의 퀼팅 보디와 체인 스트랩의 블랙 백 가격 미정.

CHANEL, 샤넬 백에 담긴 시간
인생의 반환점 즈음에 이르면서 나의 패션 공식은 매우 단순해졌다. 집을 벗어나는 거리에 따라 옷차림이나 화장을 할지 말지를 결정할 뿐이다. 한때 프렌치 시크에 빠져 살았던 패션 기자 시절이 있었다. 언제나 트렌드에 민감하고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스타일을 추구했다. 캔버스와 에코 백을 매치한 캐주얼 룩부터 매니시한 슈트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지만, 그때 유일하게 가진 명품은 샤넬 백이었다. 서른두 살의 가을, 파리 방돔 매장에서 샤넬 백을 일시불로 구매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 내리던 날, 가방을 품에 안고 숙소로 돌아오며 파리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원망했던 기억도 함께 말이다. 그토록 소중한 가방이었지만, 나의 생활 습관을 바꾸지는 못했다. 샤넬 백은 일상 속에서 보부상의 봇짐처럼 이것저것 가득 담긴 채 아무 데나 던져지기 일쑤였고, 기름기가 난무하는 회식 자리에도 어김없이 동행했다. 심지어 아기가 메고 싶어 하면 체인을 매듭지어 짧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샤넬 백은 나와 함께하며 스크래치도 생기고 형태도 변했지만, 오히려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더 멋지게 느껴졌다. 기자 생활을 정리할 때쯤 샤넬 백을 상자 속에 넣었다. 겉치레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들이 무겁고 재미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나 방을 정리하다가 다시 발견한 샤넬 백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반가웠다. 예전만큼 자주 들지는 않지만, 백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샤넬 백은 단순히 유행하는 아이템이 아니다. 그 안에는 시간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클래식한 디자인이 트렌드를 초월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샤넬의 힘이다. 나는 이제 명품이 단지 ‘비싸고 예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브랜드의 역사와 철학, 시간을 함께하며 더 깊어지는 아름다움이 담긴 유산이다. 샤넬의 퀼팅 보디와 체인 스트랩이 시대를 초월해 ‘아이코닉 피스’로 남은 이유는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시대에 맞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백은 그저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메는 사람의 오랜 이야기를 담고 패션 정체성을 대변하는 상징이다. 이것이 진정한 스타일의 힘이다. 패션은 단순히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헤리티지와 그 안에 담긴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걸 흐르는 세월과 함께 알게 되었다.
최근 패션계에 다시 돌아오면서 느끼는 것은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빠르고 변화무쌍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한결같은 브랜드의 헤리티지 아이템들은 나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패션이 시대와 사람의 삶을 반영한다’는 말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언젠가 내 딸이 첫 명품 백을 사고 싶어 하는 날이 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샤넬 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패션은 빠르게 변화하지만, 동시에 영구적이라는 말도 함께. 한연구(프리랜스 에디터)

BOUCHERON 화이트 골드에 파베 세팅된 라운드 다이아몬드와 아쿠아프레이즈 드롭이 매력적인 링 1천4백20만원.

BOUCHERON, 부쉐론 아쿠아프레이즈의 영롱함
1893년 최초로 파리 방돔 광장에 부티크를 열고 하이 주얼리의 메카로 이끈 보석상 프레데릭 부쉐론은 긴 출장길을 떠나며 아내에게 뱀 모양의 목걸이를 선물했다. 프랑스어로 ‘쎄뻥’인 뱀이 고대부터 사랑, 지혜, 용기, 불멸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쎄뻥 보헴(Serpent Bohème)’ 컬렉션은 오랫동안 범접하지 못할 무엇이었다. 뱀 머리가 떠오르는 모티프에 뱀의 눈빛 같은 파베 세팅 다이아몬드, 무수한 비늘을 표현한 체인 세공이 성숙하고 고혹적이며 신비로운 오라를 내뿜는 여성에게만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창업주의 주얼리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이 탄생한 지 근 반세기가 지난 2017년, 고고하기만 하던 하이 주얼리 브랜드가 대중화 시동을 걸었는지 파베 다이아몬드 자리에 큼직한 유색 보석을 세팅한 캐주얼하고 다채로운 쎄뻥 보헴 모델을 내놓기 시작했다. 자수정, 황수정, 오닉스, 청금석을 시작으로 터키석, 공작석, 가닛 등 열대 과일처럼 컬러풀하고 크기, 디자인도 다양하면서 서로 믹스 매치해도 전혀 어색함 없이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마침내 2021년, 한눈에 ‘저건 내 거다!’ 싶을 만큼 티 없이 맑은 샘물을 담은 듯한 아쿠아프레이즈(Aquaprase) 모델이 출시됐다. 나는 퍼스널 컬러 때문에 옐로 골드와 진한 색 보석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를 무시하고 착용하면 엄마나 할머니 거 몰래 하고 나왔냐는 놀림을 받기 일쑤다. 그런데 상쾌하기 그지없고 화이트 골드, 화이트 다이아몬드와 환상적으로 어울리는 쎄뻥 보헴 아쿠아프레이즈는 보석 브랜드 전체를 살펴도 드물게 만날 수 있는, 나와 딱 맞는 컬러 하모니였다. 하지만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아쿠아프레이즈란 보석은 너무 새로워서 아직 시장조차 열리지 않은 상태란 점이었다. 2012년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이래 ‘보석 마니아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소식뿐 실제로 아는 사람조차 드무니 환금성, 투자 가치가 있을 리 없다. 실리주의자 지인이 알면 “그 돈으로 차라리 순금을 사면 상승률이!”라며 버럭 할 일이었다. 일단 부티크를 찾아 쎄뻥 보헴 아쿠아프레이즈를 콕 짚어 보여달라고 했다. 팬데믹 와중이어선지 매니저는 아쿠아프레이즈 전 제품을 꺼내 주렁주렁 걸어주며 환상적으로 잘 어울린다는 비즈니스용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직도 그 매니저한테 조금 미안한 건, 그렇게 환대를 받아놓고 구입은 다른 부티크에서 했기 때문이다. 뇌리에 그 자태가 맴돌던 중 ‘내가 언제부터 시장가치를 따졌지? 가진 것 중 되팔 수 있는 것도 거의 없잖아?(물건을 험하게 써서 1년만 지나도 빈티지처럼 보인다)’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가장 가까운 부티크로 달려가 안면도 없는 매니저에게 5분 만에 구입하고 말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쿠아프레이즈는 같은 원석에서 태어났어도 컬러, 투명도가 제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매의 눈으로 고르지 않으면 한 세트의 목걸이, 반지, 팔찌에 세팅되었지만 밝은 곳에선 서로 다른 보석처럼 보일 수 있다. 그 점만 아니었다면 1초 만에 신용카드를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만족이야말로 사치품에서 제일 중요한 덕목이 아니던가? 좋아하면 자주, 오래 착용하게 돼 평생 친구가 된다.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모셔진 저주받은 45.52캐럿 블루 다이아몬드, 일명 블루 호프(Blue Hope)는 기증자 해리 윈스턴을 제외하고 루이 14세,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한 역대 소유자 수십 명 모두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처럼 여러 사람을 거치기만 하고 아무도 오래 즐기지 못한 보석보다 얼마나 가치가 큰가?’라고 구구절절 자기 세뇌를 거듭하며 TPO에 무관한 채 일심동체처럼 함께하는 중이다. 다행히 지금도 그 영롱한 물빛을 바라볼 때면 영혼까지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이선배(<멋진 사람들의 물건> 저자)

OMEGA, 오메가라는 이름
고급 손목시계는 특이한 물건이다. 사람들이 사는 물건 중 값비싼 재화에 속하고 제조사들도 그만큼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막상 소비자는 품질에 크게 관심이 없고 절대적 완성도가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오메가는 알지만 왜 뛰어난 시계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메가 역시 상당한 매력과 저력을 지닌 회사인데도. 내게 오메가 헤리티지의 상징은 1990년대 시계다. 물론 그전부터 대단한 헤리티지를 쌓아오고 알리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역사(19세기부터). 유명 모델(스피드마스터, 드빌). 역사적 에피소드(이들이 영원히 활용할 달 착륙과 아폴로 13호). 기술력(메타스 인증이나 항자성). 신소재(합금, 세라믹), 그리고 스누피 어워드와 문스와치까지. 그 사이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시계는 그저 베스트셀러인 ‘씨마스터 300’, 그중에서도 블루 다이얼에 브레이슬릿 버전이다. 나는 이 시계가 오메가를 넘어 스위스 시계 업계의 큰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느낀다. 그 이정표의 이름은 마케팅이다.
씨마스터 300은 1995년 영화 <골든 아이>에서 007 시계로 등장했다. 우아하고 귀족적인 피어스 브로스넌 시대의 007 시리즈다. 시계 면에서 보자면 ‘처음으로 본드가 오메가를 차고 나온 영화’다. 이후 오메가는 2020년까지 총 아홉 편의 007 시리즈에 계속 출연했다. 이 협업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성공적이었는지 스위스 비엘에 있는 오메가 박물관에는 007 코너를 따로 마련해 본드와 함께한 시계 아홉 점을 모두 전시하고 있다. 씨마스터 300의 상징성은 고도화된 마케팅 세계로 들어가기 시작한 스위스 시계라는 점이다. 스위스 시계 업계는 1970년대 이후 새로 재편되었다. 스위스 시계는 특유의 정밀도와 정확성이 강점인 고가의 고기능 제품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 대중화된 쿼츠 무브먼트는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압도적인 정확성을 달성했다. 스위스 시계 업계는 근로자의 70%를 해고할 만큼 강력한 구조조정과 컨설팅을 거쳐 몇 개의 그룹으로 재편됐다. 그 결과 태어난 것이 오늘날의 스와치 그룹이고, 오메가는 스와치 그룹에서 가장 큰 브랜드 중 하나다. 1990년대 오메가는 스위스 시계 업계의 전설적 마케터 장 클로드 비버를 마케팅 총괄로 기용했다. 그의 수많은 성공 사례 중 하나가 ‘오메가를 찬 007’이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007이 차고 나오자 씨마스터가 수천 개씩 팔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씨마스터는 영화 속 007의 목숨뿐 아니라 오메가라는 회사의 목숨을 되살리는 데 공헌한 시계, 멀리 보면 오늘날 다시 거대해진 스위스 시계 업계의 부활에 공헌한 시계이기도 하다.
내게 이 시계는 그 자체로 본질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라 특별하다. 스위스 시계 업계는 컨설팅을 통한 마케팅과 귀금속화로 아직도 번성 중이다. 어떤 애호가들은 스위스 시계가 본래의 정신을 잃고 점점 비싸진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예전을 그리워하는 애호가의 마음은 이해한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더 수수하고 더 뭉툭한 예전 시계들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계식 시계는 더 정확하고 튼튼해졌으며, 더 견고하고 다양해졌다. 오메가는 그러한 기계식 시계의 발전을 주도한 회사 중 하나다. 발전을 위한 돈을 만들어주는 ‘볼륨 모델’은 모든 생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 면에서 나는 피어스 브로스넌이 찼던 블루 다이얼 스틸 브레이슬릿 버전의 오메가 씨마스터 300이 중요한 이정표이고, 그러므로 오늘날의 헤리티지로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박찬용(<요즘 브랜드> 저자)

SAINT LAURENT 스테파노 필라티가 디자인한 스모킹 슈트 모티프의 원피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SAINT LAURENT, 여성의 힘, 생 로랑 르 스모킹 슈트
이브 생 로랑은 1966년 ‘르 스모킹(Le Smoking)’을 발표했다. 남성의 권위를 상징하던 턱시도를 여성복에 도입함으로써 성별의 경계를 무너뜨린 혁신적 아이디어였다. 슈트는 일하는 여성의 일상복으로 자리 잡았다. 오히려 그 때문에 최초의 르 스모킹처럼 날렵한 슈트는 여성에게 가장 어려운 옷이 되었다. 귀한 자리에서 잘못 입었다간 종업원이나 경호원으로 오해받아 길 안내를 도맡게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느 위대한 아이디어들이 그렇듯 르 스모킹이라는 용어와 그 안에 담긴 정신은 살아남아 존경을 받고 있다. 생 로랑의 정중한 이미지, 여성의 성공을 지지하고 테일러링에 진심을 다하는 브랜드라는 믿음도 여기서 왔다.
나는 슈트를 좋아한다. 잘 재단된 슈트는 현대인의 무기다. 입체 재단과 좋은 소재는 ‘어떻게 보일까’ 의식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솔기와 봉재 한 땀에도 공을 들인 옷은 자연스럽게 신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돕는다. 더구나 슈트라면, 사교와 협상에 필요한 자신감까지 얻을 수 있다. 나는 과거 머리에 꽃을 달고 비키니를 입은 채 출근해도 말릴 사람 하나 없는 자유분방한 조직에서 일을 했다. 그래도 평판 나쁜 남자들과 미팅이나 회식이 잡히면 자발적으로 기본 핏의 팬츠 슈트를 입었다. 평화의 제스처로 블랙 대신 핀 스트라이프를 고르긴 했다. 핀 스트라이프를 여성복에 도입한 사람도 이브 생 로랑이다. 여성의 슈트를 이야기할 때 패션 사가들은 대개 19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개봉한 영화 <모로코>에서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멋진 턱시도를 입고 나왔다. 슈트뿐 아니라 바지 자체가 여성의 일상복으로 자리 잡지 못한 시대, 디트리히의 턱시도는 섹시한 이벤트로 받아들여졌다. 르 스모킹의 의의는 그 슈트를 ‘직업을 가진 현대 여성’의 복식으로 재정의한 데 있다. 여성의 굴곡진 신체에 맞춰 슈트를 제작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다. 거치적거리거나 들뜨는 곳 없이 완벽하게 신체를 포용하는 슈트는 드물게 발견된다. 그런 옷을 찾아내면 제조사가 생 로랑이 아니어도 여성용 슈트라는 개념을 발명한 이브 생 로랑에게 감사를 보낸다.
요즘은 티셔츠 한 장, 운동화 한 켤레를 고를 때도 ‘헤리티지’라는 용어를 지겹게 듣는다. 패션 브랜드들은 독창적 스타일의 결핍을 스토리로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창업자의 고조할머니가 삯바느질한 것도 브랜드와 그 팬들에게는 의미 있는 역사일 수 있다. 하지만 생 로랑처럼 온 인류가 공유하고 기념할 만한 과거를 지닌 브랜드는 많지 않다. 아마 생 로랑이라는 브랜드가 망한다고 해도 패션 산업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역사와 르 스모킹은 끝없이 회자될 것이다. 진정한 헤리티지란 이런 것이다. 이숙명(<사물의 중력> 저자)

TOD’S, 토즈의 완벽한 레더 재킷
미니멀리스트로 살기로 결심한 이후 옷장을 채우기보다는 비우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능한 한 최소한의 옷을 잘 활용해서 품위 있게 사는 것이 목표다. 과거의 탐험을 통해 스스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 뭔지 알게 되었다. 지향점은 이렇다. ‘너무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남다름이 있을 것’ ‘좋은 소재로 만들어 착용했을 때 은밀한 만족감을 주고 시간이 지나도 예쁘게 낡을 것’. 이걸 한마디로 정의하면 ‘클래식’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쇼핑의 전리품 중 아직까지도 여전히 손이 가는 물건은 역시나 클래식한 것들이다.
신중함이 지나친 쇼퍼가 된 탓에 가장 최근의 쇼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토즈 매장 옷걸이에 걸려 있는 레더 재킷을 마주했을 때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게 될 옷임을 직감했다. 넉넉한 오버 핏, 거의 블랙처럼 보일 만큼 짙은 브라운 컬러,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잘 무두질한 가죽의 질감까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마주하면 이런 탄식을 내뱉게 될까? 흥분된 호흡을 하며 나는 재킷을 몇 번이나 만져보며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선뜻 가지고 올 수 없었던 것은, 그러니까 유일한 걸림돌은 이것이 계획에 전혀 없던 쇼핑이라는 사실이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앞으로 이 재킷을 얼마나 입게 될까?’라고 자문했을 때 머릿속에는 이런 답이 떠올랐다. ‘환절기부터 입기 시작해서 오버 핏이라 안에 막 껴입을 수 있으니 너무 춥지 않은 초겨울까지도 입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20년 정도 지난 뒤에 입는다면 무척이나 시크한 할머니로 보일 것 같았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투박하고 터프한 디자인이면서 밑단 가죽에 탄력 밴드를 넣어 약간 오므라지며 러플처럼 보이게 한 포인트와 소매 중간에 세 가닥 정도의 주름을 잡아 자연스러운 커브가 지도록 한 디테일까지 뭐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2020 F/W 시즌부터 토즈를 맡아서 장인 정신에 기반한 브랜드의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전달해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발테르 키아포니의 담백한 컬렉션을 개인적으로 좋아했기에 쇼핑의 명분은 더욱 분명해졌다(토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2024년 초에 마테오 탐부리니로 바뀌었다). 좋아하는 크리에이터의 컬렉션 하나쯤은 소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패션 에디터의 사명감까지 발동된 것이다. 지갑은 마법처럼 스르륵 열리고 말았지만, 이것은 분명 날카롭게 발현된 이성의 산물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토즈 레더 재킷은 오렌지 브라운 컬러의 로고가 새겨진 가먼트 백에 곱게 모셔두었다. 옷장에 있지만 존재조차 까먹는 옷이 여전히 수두룩하지만 토즈 레더 재킷만큼은 가을이 다가오면 언제나 가장 먼저 생각나고 이번에는 어떻게 입을까 궁리하며 즐거워지는 옷이다. 언젠가 더욱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옷 열 벌만 남기고 다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토즈 레더 재킷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최후의 한 벌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가죽 장인의 헤리티지를 간직한 ‘가죽 스페셜리스트’ 토즈의 레더는 무엇이든 언제나 정답에 근접한다. 명수진(<최고의 명품, 최고의 디자이너> 저자)

CARTIER 슬림한 다이얼과 다크 브라운 컬러의 악어가죽, 로즈 골드 버클의 매치가 조화로운 워치 1천6백만원대.

CARTIER, 빈티지 까르티에 탱크의 영속성
운명의 빈티지 까르티에 탱크와 만나기 전, 나는 시계를 거의 착용하지 않았다.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 인터뷰와 촬영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디지털 워치를 착용했는데, 손목을 답답하게 하는 도구는 이거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혹독하게 비싼 시계들에 눈길을 주지 않던 내가 시계에 처음 매력을 느끼게 된 건 주얼리 디자이너 소피 부하이가 SNS에 올린 한 장의 흑백사진 때문이었다. 나에게 스타일적으로 무한한 영감을 주는 뮤즈인 그녀가 소개한 시계는 1910년 발매된 까르티에의 ‘산토스 뒤몽(Santos-Dumont)’. 무난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일부러 멋을 부린 듯한 느낌이 전혀 없는 손목시계였다. “가치 있는 빈티지 시계 하나는 온갖 고민 끝에 입은 빈티지 옷보다 훨씬 근사하지”라고 말하던 아트 디렉터의 말이 떠올랐다. 그날부터 몇 달 동안 평생의 동반자를 찾는 심정으로 온·오프라인을 돌며 빈티지 까르티에 시계를 찾아다녔다.
내가 원한 디자인은 잡지 속의 모델이 착용하는 럭셔리한 시계가 아닌 취향 좋은 여성이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듯한 시계였다. 우연히 방문한 라이프스타일 숍에서 곱게 잘 낡은 까르티에 탱크를 만났다. 볼륨을 낮춘 듯 차분하고 뉴트럴한 톤의 가죽 스트랩이 연결된 제품이었는데, 자연스러운 스크래치와 약간의 변색이 눈에 띄었다. 비록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섬세하고 미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시계는 단번에 시적으로 다가왔고 바로 결제로 이어졌다. 돌아보면 그날 이후부터 하루도 까르띠에 탱크를 차지 않은 날이 없다. 친구들과 와인잔을 부딪힐 때든,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끼고 공원에 갈 때든,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갈 때든 그냥 내 피부처럼 자연스럽게 빈티지 탱크를 손목에 두르곤 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야쿠쇼 고지가 항상 선반 위 같은 자리에 소지품들을 풀어놓듯 나 역시 빈티지 탱크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7년 동안 경험한 까르티에 시계의 장점은 고요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어떤 옷을 입어도 까르띠에 시계를 손목에 올리면 더 나다워지고 힘이 생기는 걸 느낀다. 고유한 감각과 역사를 지닌 시계는 그 어떤 장신구도 무용지물로 만든다고 했던가? 내년에는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오던 산토스 뒤몽을 스스로에게 선물할 것이다. 영속성을 지닌 까르티에의 시계들과 함께하며 다양한 챕터를 써 내려갈 나의 삶이 기대된다. 공인아(프리랜스 에디터)

MAX MARA 퓨어 캐멀 헤어로 만든 스트레이트 컷의 벨티드 코트 4백38만원.

MAX MARA, 어른의 상징, 막스마라 코트
‘윤기 흐르는 캐멀 컬러의 코트에 고운 숄을 두른 중년 여성’은 20대에 품은 40대에 대한 로망 중 하나였다. S 교수님의 코트를 옷걸이에 거는 것이 일과 중 하나였던 조교 시절, 그녀의 묵직한 캐멀색 코트의 뒷목 부분에는 ‘Max Mara’ 라벨이 붙어 있었다. 사계절 똑같은 단발머리에 비슷해 보이지만 디테일이 다른 뉴트럴 톤의 재킷들, 목걸이처럼 늘 걸고 다니던 고풍스러운 안경 줄까지 중년의 교수님에게는 언제나 ‘본인다운 룩’이 있었다.
막상 30대가 되었을 땐 교수님도, 캐멀색 코트도 까먹었다. 직장인이 된 나는 겨울마다 당시 유행하거나 눈에 들어오는 아우터를 샀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좋아하는 것을 찾고 발견하는 여정이라 해야 할까. 마흔을 앞둔 어느 날 DDP에서 열린 막스마라의 <Coats!> 전시를 보러 갔다.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막스마라의 역사와 다채로운 코트들을 망라한 전시였다. 마네킹에 입혀져 있는 1960년대 셋업에서는 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선명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시대에 부합하는 차림새는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내가 좋아한 고전적 스타일이었다. 시대별로 선망되는 몸매와 차림새가 다르다지만 이상적인 프로포션을 보여주는 우아한 코트들을 보고 있노라니 눈과 마음이 한결 즐거워졌다. 통통한 내 체형과 요즘의 트렌디한 옷차림 사이에는 언제나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어울리는 것보다 어떻게 보이는지를 더 신경 쓰는 선택을 했던 것도 같다. 옷장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춘 시행착오의 결과물로 가득 차 있었다.
막스마라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각기 다른 명도와 채도, 터치감과 혼용률로 만들어진 수백 벌의 캐멀색 코트 섹션이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언제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캐멀색 코트를 잊고 있었던 건 아직 내가 취향을 갖춘 어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십 년 전 S 교수님의 룩은 본인다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났기에 근사해 보였다. 막스마라의 캐멀색 코트는 자신다운 취향에 방점 하나를 찍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날 오랫동안 전시장에 머물며 캐멀색 코트를 보고 또 봤다. 돌아오는 길에는 반차를 썼다. 그리고 가슴 한편에 미뤄두었던 막스마라의 캐멀색 코트를 샀다. 도톰하고 매끄러운 이탈리아산 100% 버진 울 소재에 누렇거나 붉지 않은 따뜻한 톤의 캐멀 컬러. 프런트에는 핸드메이드 스티치가 한땀 한땀 놓아져 있고 소매와 기장이 나에게 너무 길지 않으며 스트랩으로 허리를 잘록하게 묶을 수 있는 코트 말이다. 아무 날도 아니었고, 마흔이 다 된 나에게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코트이고, 매해 그것을 대신할 다른 코트를 사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한시라도 빨리 사서 입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흠모하는 S 교수님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어른의 모습에 한발 더 다가간 것만큼은 확실한 듯싶었다. 이홍안(마케터)

HERMÈS 지안파올로 파니가 디자인한 실크 트윌 소재의 스카프 가격 미정.

HERMÈS, 에르메스의 예술적인 스카프
나는 스카프를 좋아한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허락된 목도리와 달리 부드럽게 감기는 실크 스카프는 성숙한 여인의 전유물처럼 느껴진다. 도봉산 산행 지도가 그려진 면 스카프가 산악회 회원들의 필수 아이템이라면 실크 스카프는 도시적 낭만의 상징이랄까? 스카프와 관련한 얘기에 영화 <로마의 휴일>과 오드리 헵번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부러진 팔에 깁스 대신 스카프를 두른 그레이스 켈리는 또 어떻고! 1956년 봄 레니에 3세와 결혼하며 모나코 공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는 1957년에 출시된 에르메스의 ‘데오 유반테 모나코(Deo Juvante Monaco)’ 스카프를 삼각 모양으로 접어 목과 팔에 둘렀다. 네모진 모양을 뜻하는 이 까레(Carrre) 스카프는 모나코 왕국의 문장(Coat of Arms)에서 영감받아 디자인된 것으로 이후 전 세계 소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나 역시 에르메스 스카프를 두른 우아하고 아름다운 내 모습을 수없이 상상하곤 했다. 첫 월급을 받은 날 에르메스 매장으로 달려가 한 장의 스카프를 고르기 위해 얼마나 고심을 했던지. 내게는 단지 스카프가 아니라 진정한 패션의 세계, 어른들의 세상으로 진입하는 출입증 같았다.
에르메스 스카프는 파리 올림픽에서 또 한번 화제가 되었다. 2024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 포스터를 그린 위고 가토니(Ugo Gattoni) 때문인데, 그는 에르메스 스카프 디자이너로도 유명하다. 파리에서 일러스트레이터 활동하는 위고 가토니는 연필과 잉크를 사용해 초현실적인 도시 풍경을 그린다. 2015년 에르메스와 첫 인연을 맺은 그는 ‘히포폴리스(Hippopolis)’라는 상상 속 말의 도시를 스카프에 그려 넣었고, 이후 컬러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2017년에는 맨해튼을 소재로 한 한정판 까레와 남성용 스카프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에르메스 스카프를 디자인한 미술가는 여럿이다. 대표적으로 올해 초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연 프랑스 화가 시릴 콩고, 2024 프리즈 서울을 통해 소개된 일본 화이트스톤 갤러리의 코헤이 쿄모리 등이 있다. 에르메스와 작가들의 협업은 예술적인 패션 아이템의 탄생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만족감을 준다. 예술 작품을 몸에 휘감고 다니는 기분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미술품을 구입하듯 시즌마다 한 점 씩 컬렉팅하는 이들도 있다. 일례로 1945년 위고 그릭카르(Hugo Grygkar)가 디자인한 빈티지 에르메스 스카프는 2471달러(약 330만원)에 거래되었다. 다시 스카프의 계절이 돌아왔다. 하늘거리는 스카프 실루엣과 거리가 먼 건장한 어깨와 두툼한 목을 소유했지만, 총체적으로는 괜찮다. 스카프를 제대로 스타일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스카프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티셔츠와 청바지에는 클래식한 매력을 더해주고, 무채색 일색의 옷차림에는 화려한 포인트가 되어주는 스카프는 그야말로 만능이니까. 사회 초년생 때 구입한 첫 에르메스 까레부터 지난봄에 산 트윌리까지, 에르메스 스카프의 방대한 역사와 만나 나의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간다. 가을이 되면 스카프를 두르고 밖으로 나갈 것이다. 좋은 일이 생길 거라 기대하면서. 이미혜(문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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