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오감으로 쌓은 건축

겉치레를 완전히 내려놓고 느끼는 물과 산, 그리고 온천 건축

페터 춤토어가 설계한 7132 호텔의 온천. 벽과 기둥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만들었다. 그 덕에 자연이 만든 지층처럼 인공적이지 않은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 7132 Hotel - Julien L. Balmer

온천 내부에는 스위스 그라우뷘덴주 발스의 웅장한 자연환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혹한의 설경을 만끽할 수 있다.

NOA가 호텔 우베르투를 위해 디자인한 허브 오브 허츠. 20m 높이에 매달린 건축물은 주변의 경관을 방해물 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 ©Alex Filz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물에서 온천수에 비친 박공지붕을 바라보면 명상에 젖게 된다.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카이 유후인. 농촌의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Kuma Kengo

오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건축물은 무엇일까. 몸에 걸친 모든 것을 벗고 들어서야 하는 공간이자 자연의 요소를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건축물, ‘온천’이 아닐까 싶다. 훌륭한 온천 건축에는 건축가가 새겨 넣은 생동하는 감각이 있다. 2009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어(Peter Zumthor) 하면 ‘분위기’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에게 건축은 설계뿐 아니라 몸이 감지하는 소리, 온도, 냄새 등 여러 측면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스위스 그라우뷘덴주 발스에 자리한 온천은 춤토어가 중시하는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산길을 1km 남짓 오르다 보면 경사진 언덕에 숨어 있는 ‘7132 호텔’이 보인다. 호텔 지하에 자리한 온천으로 들어가면 천장의 슬릿을 통해 자연광이 신비롭게 물을 비춘다. 춤토어는 온천수를 폭포처럼, 비처럼 나오도록 설계해 동굴 같은 공간에서 물의 본질적인 소리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입욕객들은 비스듬히 설계된 탕 안으로 들어가며 물을 서서히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페터 춤토어는 책 <건축을 생각하다>에서 “건축 당시 건물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려서 그 이미지를 프로젝트에 맞춰 조정하는 게 아니라 부지의 위치, 목적, 소재(산, 바위, 물)가 제기하는 기본 의문에 대답하면서 작업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어떠한 하나의 스타일로서 건축을 구현하기보다 훨씬 더 깊은 원초적 힘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춤토어의 접근법처럼 건축물의 주변 경관을 오감을 활용해 해석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건축가 구마 겐고(Kuma Kengo)가 최근 완공한 카이(KAI) 유후인이다. 카이 유후인이 자리한 일본 오이타현은 계단식 논이 유명한 지역이다. 구마 겐고는 지역의 고즈넉한 풍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전원 속에서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공간을 고민했다. 그는 ‘지는 건축’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곤 하는데, 지는 건축이란 “인간이라는 작고 약하고 덧없는 존재가 똑같이 작고 약하고 덧없는 사물을 동료로 삼음으로써 살아남는”(<점.선.면>, 구마 겐고) 건축에 가깝다. 그의 가치관을 보여주듯 단층 건물은 계단식 논과 소박하게 어우러져 있다. 삼나무를 활용한 지붕에는 디테일한 곡선과 질감이 드러나는 처마를 더해 전통적인 일본 건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NOA(Network of Architecture)가 호텔 우베르투스(Hubertus)를 위해 디자인한 ‘허브 오브 허츠(Hub of Huts)’는 공감각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공중에 떠 있는 듯 설계되어 있는 박공지붕의 건물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허브 오브 허츠에서는 주변의 자연경관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으며, 탕이 있는 공간과 샤워실, 탈의실, 사우나 등으로 구성되어 온전한 쉼이 가능하다. 또한 스파의 감각과 탁 트인 풍경뿐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던 중력까지 알아차릴 기회를 선사한다. NOA의 건축 팀은 “물 표면에 비친 모습을 마치 건축 프로그램에서 구현할 일시적 렌더링인 것처럼 현실에 만들고 싶었다”고 디자인 콘셉트를 고안할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또한 물에 비치는 이미지는 명상적 피난처로 표현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마치 깊은 명상에 잠겼을 때 기존의 개념과 지각, 관점 등이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고 변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오감이 무뎌지고 쇠퇴한다. 하지만 몸의 감각을 골고루 활용하면 뇌의 신경가소성(성장과 재조직을 통해 뇌가 스스로 신경 회로를 바꾸는 능력)을 촉진해 불안과 우울이 줄어들고 균형감이 높아진다. 건축가가 감각적으로 설계한 분위기 좋은 공간에서 그간 뭉툭해진 감각 세포들을 하나씩 깨워보면 어떨까. 게다가 목욕재계는 그간 쌓였던 몸과 마음의 더께를 벗기고 홀가분하게 내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Editor
BAEK KA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