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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YOUR LIFE
인상적인 컬러로 단장한 스페파니아 파세의 집
아틀리에로 개조했다. 공장 지대 특유의 높은 천장과 대형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덕분에 현란한 패턴과 컬러 조합이 더욱 돋보인다.
나프 아틀리에(Nap Atelier) 대표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스테파니아 파세라(Stefania Passera)의 공간은 단순한 집을 넘어 삶과 예술이 교차하는 창작의 무대다. 또한 그녀가 딸과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보금자리이자 직원들이 함께 작업하는 창의적 일터로 서로 다른 에너지가 공존하는 독특한 장소다. 유명 디자이너의 가구나 브랜드 제품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제작하고 큐레이션한 패턴 벽지, 타일과 앤티크 패브릭으로 교체한 가구, 개조한 아이템 등으로 공간을 채웠다. “좋은 인테리어 디자인은 집주인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편안함을 느끼는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공간이어야 하죠.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집, 그게 바로 제가 선호하는 개성 있는 공간입니다.” 그녀는 컬러와 패턴이라는 고유의 언어로 집 안 구석구석에 자신의 취향을 지문처럼 새겨놓았다. 3층 높이의 커다란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실에는 에메랄드 핑크와 올리브 그린 소파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너머의 서재와 작업 공간은 마치 깊은 숲을 연상시키는 짙은 그린 색감으로 가득 차 있다. 주방은 머스터드 옐로 컬러의 가구와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침실에서는 구름, 식물, 야자수 등이 담긴 화려하고 초현실적인 패턴 벽지가 벽을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듯하고, 강렬한 색감의 가구들이 존재감을 발산하며 시선을 잡아끈다.
아쿠아 블루 컬러가 시선을 모으는 소파 베드는 이탈리아 장인들과 함께 만들었다. 쿠션은 모두 나프 아틀리에 제품.
거실 옆 작업 공간은 가스톤 이 다니엘라(Gastón y Daniela)의 패턴 벽지로 포인트를 주고, 빈티지 의자는 벽지와 어울리는 패브릭으로 감쌌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스테파니아 파세라는 어린 시절부터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왔다. 26세가 되던 해에 홀로 밀라노로 떠나 비알레 피아베(Viale Piave) 거리에 첫 번째 숍 나프 아틀리에를 열었다. “어릴 때부터 독특한 컬러와 패턴을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 집을 꾸미는 일은 마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저는 언제나 ‘홈 아틀리에’를 꿈꿨어요. 제 삶이 곧 일이자 취향이니까요.” 이후 네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매번 집을 일터로 함께 사용했다. 올해에도 그녀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어느 날 동료 디자이너인 칼로타가 1960년대에 지어진 엘리베이터 공장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매물을 보고 계약하기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어요. 그곳이 우리의 새로운 집이 될 거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거든요.” 좁은 골목 끝에 자리한 공장은 마치 숨겨진 보물 상자처럼 그녀를 맞이했다. 작업장 앞에 있는 작은 마당을 본 순간 머릿속에는 그곳을 가득 채울 식물들과 꽃들이 그려졌고, 아웃도어 의자와 파라솔이 놓일 자리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작은 사무실,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여유로운 거실, 실용적인 주방, 아늑한 침실까지 모든 것이 꿈결처럼 상상 속에서 펼쳐졌다. 그녀는 불과 10분 만에 계약을 결심했고, 그 공간을 통해 나프 아틀리에의 새로운 세상을 완성했다.
현관에 들어서면 딱딱하고 차가운 시멘트 외관과 대조적인 분위기의 따뜻한 테라스가 손님을 맞이한다. 높은 천장과 대형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빛 덕분에 예상치 못한 개방감이 느껴진다. 스테파니아 파세라는 공간에서 빛의 역할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컬러와 패턴을 완성하는 것은 바로 빛이에요. 좋은 집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도 대부분 빛이 공간을 자연스럽게 흐르기 때문이죠. 이곳에 반한 이유도 빛이 공간 구석구석까지 퍼지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빛의 궤적을 따라 과감하게 컬러와 패턴을 배치했다. 거실에는 바닥 러그와 소파로 강렬한 컬러와 패턴을 더하고, 서재와 다이닝 룸은 벽 전체를 패턴 벽지로 감쌌다. “컬러와 패턴은 단순히 머리로 상상하거나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실제로 배치해봐야 병치 효과나 시각적 왜곡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죠. 점묘화를 떠올려보세요. 함께 사용하는 색에 따라 명도와 대비가 달라지잖아요. 패턴도 똑같아요. 좁은 공간에서도 패턴을 잘 사용하면 시선을 분산시켜 넓어 보이는 효과를 줄 수 있고, 특정 지점에 시선을 모을 수도 있어요.” 이 원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침실과 욕실이다. 좁은 공간이 넓어 보이도록 17세기 태피스트리 풍경화를 패턴으로 옮긴 콜앤선(Cole & Son)의 베르듀어 태피스트리와 풍성한 나뭇잎이 반복되는 나프 아틀리에의 오크 트리 블루 월페이퍼를 각기 다른 벽에 적용했다. 이로써 시선을 분산시키며 공간이 넓어 보이는 효과를 얻었다. “컬러 패턴 벽지는 쉽게 질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활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언어에도 반어법, 역설법 같은 것이 있듯 인테리어 역시 다른 재질, 형태, 조명 등을 이용해 이질감을 더하면 호기심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죠. 비슷한 색조로도 다른 느낌을 연출할 수 있고요.”
머스터드 옐로 컬러와 타일 패턴으로 완성한 흥미로운 주방.
콜앤선의 베르듀어 태피스트리와 풍성한 나프 아틀리에의 나뭇잎이 반복적으로 그려진 아제나 오크 트리 블루 월페이퍼로 벽을 마감했다. 장인이 수작업으로 완성한 더블 침대는 나프 아틀리에 판매.
사람들이 이 집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공간은 바로 욕실이다. 욕실에도 색채와 패턴이 숨어 있을까 싶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민트와 올리브 그린 컬러가 변기, 세면대, 욕조까지 물들였다. 심지어 샤워기와 수도꼭지 같은 작은 디테일에도 컬러가 적용되었다. “욕실은 가장 사적인 공간인 동시에 공적인 성격을 지닌 곳이죠. 저는 욕실과 거실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실과 욕실을 같은 컬러와 패턴으로 꾸미고 조명도 거실 테이블 램프를 활용했어요.”
테이블 위에 무심하게 쌓인 책과 도자기, 천장에서부터 빼곡하게 걸린 크고 작은 그림과 사진, 그리고 가구 사이사이 마치 느낌표처럼 놓인 화분들까지 모든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꾸밈없지만 그 자체로 멋스럽고 세련된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그녀는 집을 하나의 스타일로 규정하지 않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처음 집에 발을 들이면 다소 혼란스러운 인상을 받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집에 적용된 컬러와 패턴이 모두 자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또 실제 식물을 사용해 인공적인 요소와 자연의 균형을 맞췄다. 거실을 가득 채운 식물들은 어떤 색보다도 생동감 넘치는 녹색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녀는 공간이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넘어 창의적인 영감을 주기도 하고 신선한 긴장감을 선사하기도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스테파니아 파세라의 독특한 컬러와 패턴 감각은 타고난 것일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한다. “컬러가 두렵다는 건 그만큼 사용해본 경험이 없다는 뜻이에요. 모험적인 조합을 시도해볼수록 컬러와 패턴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죠. 강렬한 색들이 만나면 오히려 평화롭고 조화로운 분위기가 생겨요. 컬러를 사용하다 보면 그 안에 숨은 다양한 표정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어요.”
거실 너머 클래식 몰딩 장식으로 꾸민 중문을 지나면 정원에 들어선 듯한 작업 공간이 나타난다. 클라이언트와 나프 아틀리에 창업자이자 대표인 스테파니아 파세라, 매일 함께하는 파트너인 줄리아, 테오도라, 엘리사의 모습.
스테파니아 파세라의 집이 특히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저 달콤한 컬러들 때문만이 아니다. 손끝에서 비롯된 정성과 시간이 깃든 물건들이 집 안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20세기 목제 안락의자와 1930년대 아르데코 스타일의 테이블, 그리고 빈티지 의자들을 소개했다. 안락의자는 직접 레오퍼드 패턴 패브릭으로 교체해 현대적 감각을 더하면서도 강렬한 개성을 부여했다. 빈티지 의자들은 다채로운 현대적 오브제와 함께 배치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처럼 새로운 가구를 구입하는 것보다 기존의 가구를 개조하고 수리해 자신의 스타일로 재탄생시키는 방식을 권장한다. 사연이 깃든 물건은 어떤 세련된 디자인보다 더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집은 신제품이 탄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프 아틀리에 신제품이 완성될 때마다 직접 이곳에서 사용해본다. 오랜 시간 공들여 그린 그림은 벽지나 오브제, 또는 쿠션의 패턴으로 재탄생해 새로운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패션의 역사를 보면 불황기에는 오히려 더 화려한 스타일이 유행했어요. 1970년대 오일 쇼크 시기에는 꽃무늬와 보헤미안 스타일이 거리 곳곳을 채웠죠. 요즘 사람들도 텅 빈 공간에서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대신 자신이 직접 만든 물건이나 좋아하는 물건, 그리고 밝고 긍정적인 컬러에서 안정감과 위안을 찾으려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이제는 평생 함께할 ‘반려 물건’으로 집을 꾸미는 것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스테파니아 파세라는 집이 더 이상 혼자만의 성처럼 닫힌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집은 사람의 온기로 완성되며,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는 열린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으로의 집은 점점 더 누군가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할 것이라 예측한다. 이러한 철학은 고객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나프 아틀리에를 찾아오는 고객들은 마치 집에 초대받은 손님처럼 그녀와 차를 마시며 긴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고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컬러와 패턴을 함께 찾아나가며 최대한 집주인과 닮은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고객들도 미처 몰랐던 내면의 욕구를 발견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기도 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집주인이 자신의 욕구와 취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변화하고 성장하는 살아 있는 생물체와 같죠.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과 더 닮아가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해서 피어나는 공간이 되는 겁니다.”
Editor
KIM JISEON
Photographer
FABRIZIO CICCONI
Writer
GYE ANNA
Stylist
FRANCESCA DAVO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