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HEALTHY PLEASURE

건강한 삶 속에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

새롬케어웍스 공간에 놓인 수정 구슬. 수정은 공간의 에너지를 균형 있게 조절하고 정화하는 데 탁월하다고 한다.

CARE, 재밌고 새로운 자기 돌봄, 서새롬
맑은 공기가 흐르고 인왕산이 선명히 보이는 곳에 서새롬 대표가 운영하는 새롬케어웍스(Saerom Care Works)가 있다. 새롬케어웍스가 보금자리를 튼 건물은 우경국 건축가의 초기 작품이기도 하다. 건물 중정의 계단을 올라 2층의 문을 열자 아이보리 색깔의 따뜻하고 아늑한 내부가 나타났다. 사면의 벽을 둘러싼 창문을 통해 바깥의 실루엣과 햇빛이 내부로 쏟아졌다.
2020년 문을 연 새롬케어웍스는 서새롬 본인의 이름이기도 한 ‘새롭다’는 의미와 돌봄, 간병을 뜻하는 케어 웍스(Care Works)를 더해 만든 이름이다. 특히 그녀의 지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은 ‘자기 돌봄’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남녀노소, 장애인와 비장애인 모두 돌봄을 주는 자와 받는 자를 구분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것이 새롬케어웍스의 목표예요.”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는 돌봄을 사소하게 치부할 때 생겨나곤 한다. 예를 들면 돌봄 노동을 여성의 전유물로 여기는 구시대적인 생각, 건강을 완전히 잃고 나서야 간병이나 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착각은 사회 구조의 불균형과 불안을 초래한다. 새롬케어웍스는 자기 돌봄을 안내하는 커다란 지향 속에서 요가와 명상 등의 다양한 활동을 도구로 활용한다. 그중 근간이 되는 것은 요가 철학을 기반으로 한 요가와 명상 수업이다.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채로운 수업 중에는 사주명리를 통해 삶을 읽어보는 시간도 있다. “사주명리 수업은 어머니가 이끌고 계세요. 어머니께서는 오래전부터 요가를 가르쳐왔고 명리학도 공부하셨거든요. 그래서인지 저는 요가를 하나의 리추얼처럼 쉽게 접했어요.” 서새롬 대표는 본격적으로 요가 안내자로 활약하기 전부터 대안학교 교사, 농부, 활동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작가, 웰니스 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그러한 면모가 새롬케어웍스의 행보에서 잘 나타난다. 일례로 올해 선보일 예정인 새롬케어웍스 2.0에서는 ‘이야기’라는 테마로 요가와 명상을 연결한다. “개인의 서사를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을 계획해보려고 해요. 요가와 명상이 어렴풋하게 일상에 영향을 준다고 느껴졌다면, 연관된 이야기를 함께 쓰고 읽으며 그 영향을 삶 전반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게 될 거예요.”

오전의 빛이 쏟아지는 새롬케어웍스에서 요가 동작을 선보이는 서새롬 대표.

서새롬 대표에게 건강이란 무엇일까? 과거에는 건강이 자신의 삶에 없는 것이라 여겼다던 그녀는 요가를 수련하면서 각자의 삶에 이미 내재돼 있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건강을 유지하는 일은 마치 아이를 정성껏 돌보는 과정 같다고 덧붙였다.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 언제나 좋은 선택만 하지는 않아요. 때로는 결단도 필요하고 용감한 선택도 필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건강이란 자신의 몸을 더 연구해보는 창의성의 영역인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아이를 낳으며 육아에 필요한 정신적, 육체적 근육을 기르는 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창의성을 유지하는 원동력에 관한 질문에 아이의 시선에 빗대어 설명했다. “아기들은 보통 하루를 끝내듯 잠에 들고 아침에는 새로운 날을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살아요. 저도 자기 전에 집 안의 모든 스위치를 끄고 아침에 일어나서 주변 사물을 처음 마주하듯 보려고 해요. 다시 말하면 늘 보던 것을 새롭게 보려는 데서 창의성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육체와 정신, 영혼의 세 가지 요소가 마치 즐거운 놀이를 하듯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이 그 자체로 새롬케어웍스가 추구하는 돌봄의 이상향을 보여주는 듯했다.

저속 노화 열풍을 불러일으킨 정희원 교수의 저서들.

FOOD, 나를 이루는 음식, 정희원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식단과 운동을 비롯한 생활 습관을 재점검한다. 그러나 1월이 채 지나기 전에 다시 일상이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서울아산병원의 노년내과 의사이자 전 국민의 ‘저속 노화 선생님’이 된 정희원 교수는 재치 있는 말과 글을 통해 지치지 않고 좋은 습관을 독려한다. “결심을 했다가 흐트러지는 것은 당연해요. 그래도 다시 하면 됩니다. 언젠가는 그게 습관으로 굳어요. 아이가 무수히 넘어지고 나서야 서고 걷는 것처럼요.”
건강한 식사법을 둘러싼 담론이 이렇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정희원 교수의 저속 노화 식사법은 ‘핫하다’. 성별이나 연령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건강하게 나이 들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희원 교수가 설파하는 MIND 식사법은 생선을 자주 섭취하고 올리브유를 요리용 기름으로 사용하는 지중해 식사법과 칼륨이 풍부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고 나트륨 섭취를 제한하는 대시(DASH) 식사법의 장점을 합쳐 만든 것으로, 동물성 음식과 포화지방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을 제한하고 자연 식물식에 중점을 둔다. 특별히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이 식단이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정희원 교수가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해주었기 때문이다. 백미와 현미, 귀리, 렌틸콩 등을 적절한 비율로 혼합한 ‘저속 노화밥’은 한식 식단에 쉽게 적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꼭꼭 씹어 먹다 보면 생각보다 맛있다. 또한 건강한 끼니를 챙기기 힘들 때는 “일반인에게 컵라면이 있다면 저속 노화인에게는 렌틸콩 통조림이 있다”는 그의 말을 떠올린다. “아무리 좋은 식사법이더라도 실천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보통 건강한 식사법은 특정한 식품 몇 가지를 정해놓고 꼭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MIND 식사법은 그렇지 않아요. 특정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대신 먹으면 좋은 식품군을 말해주죠. 소위 나쁜 음식으로 알려진 것들에 대해서도 완전히 끊을 수 없다면 일주일에 몇 회 정도까지만 먹으라고 말해요. 다시 말해 MIND 식사법은 지속 가능한 식사법이고, 그래서 제가 좋아해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로 일하는 정희원 교수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의 식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강과 즐거움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희원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건강과 즐거움은 같이 갈 수 있다고 믿는 그는 ‘슴슴한 도파민’을 추구한다. “마치 잡곡밥 같은 도파민이고, 부작용이 없는 도파민이죠. 자극적인 음식과 음주, 스마트폰 사용 등의 강렬한 도파민을 추구하다 보면 마약중독에 빠진 상태와 비슷하게 됩니다.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좀비처럼 자극만을 좇는 것이죠. 모두에게 도파민 리모델링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러나 그는 최근에 시작한 러닝에서 ‘슴슴함’을 넘어서는 강렬한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겨울이라 트레드밀을 이용하고 있는데, 하프 거리를 뛰면서 러너스 하이를 세 번쯤 겪습니다. 최초의 러너스 하이는 6~7km쯤에 오는데, 세상의 해상도가 올라가는 느낌이에요. 극도의 희열이죠. 이런 경험 끝에 부작용이 없다는 게 감사한 일이에요.”
전 국민이 정치적 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 를 받고 있는 지금, 정희원 교수는 SNS에서 “제 마음도 어수선하고 울적합니다. 오늘만큼은 컴포트 푸드를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에 모두의 평화를 응원하는 멘션이 끝없이 이어졌다. “음식은 몸에 공급하는 연료예요. 몸에는 뇌도 포함되니 자연스레 영혼에 공급하는 연료이기도 하죠. 마카롱, 조각 케이크처럼 달고 예쁜 음식을 먹으면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나와서 일시적으로 스트레스가 풀려요. 이런 음식을 컴포트 푸드라고 해요. 컴포트 푸드를 먹으면 도파민이 올랐다가 곧장 기준선보다 떨어지며 편도체가 활성화됩니다. 편도체는 스트레스의 중추라, 오히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죠. 이걸 알면서도 저에게도, 다른 이에게도 일시적으로 컴포트 푸드를 허용하기로 했어요. 예외적으로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잖아요. 현 상황에서 아직 저속 노화 식사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컴포트 푸드를 먹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는 날에도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을 것 같은 정희원 교수가 간혹 즐기는 컴포트 푸드는 무엇일까? “튀김우동과 슈크림빵이에요. 고백하자면 며칠 새 슈크림빵을 좀 먹었어요. 저도 못 참겠더라고요.”

넥타이를 닮은 독특한 생김새가 인상적인 안스리움 비타리폴리움.

FOOD, 나를 이루는 음식, 정희원
식물과 공간,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이끌어내는 플랜트 작업을 하는 이지연 대표가 운영하는 그라운드(Ground)는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선정릉의 풍경을 마주하고 있다. 기후가 무섭도록 변화하고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창밖으로 보이는 한 뼘 크기의 녹지 공간과 집 안에 놓인 화분 하나가 귀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지연 대표는 일상에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도시의 가드너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땅이 아닌 화분에 심어진 식물은 진짜 자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 안에서 가장 자연에 가까운 형태를 찾고 우리의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식물의 조합을 찾아내려 해요.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는 집이 하나의 생태계니까요.”

플랜트 숍 그라운드를 이끄는 가드너 이지연은 식물과 공간,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그린다.

식물을 살리는 손을 가진 사람과 식물을 죽이는 손을 가진 사람이 있다. 식물의 생기와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모두가 식물을 잘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지연 대표는 식물을 돌보는 행위가 자신을 돌보는 행위와 부드럽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식물을 돌본다는 것은 곧 들여다본다는 뜻이에요. 매일 들여다보며 물이나 햇빛 등 식물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때가 되면 분갈이도 해줘야 하죠. 그런데 이 일이 귀찮고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저는 오히려 만사가 귀찮고 자신을 돌볼 에너지가 떨어진 사람들에게 식물을 권해요. 식물은 살아 있기 때문에 내가 돌보는 대로 자라고 변화하죠. 며칠 전에 없었던 새순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고 물을 줬더니 처져 있던 잎이 반짝이며 살아나는 등의 변화가 바로 감지돼요. 그게 곧 치유의 과정인 셈이죠. 그리고 식물의 시간은 결코 내 마음대로 안 돼요. 때가 되어야 꽃을 피우는 식물의 시간이 인간의 속도를 제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줘요.” 무기력한 상태를 추스르게 해주는 것은 드라마틱한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단단하고 반복적인 일상이다. 매일같이 식물을 들여다보는 일은 스스로를 천천히 회복시킬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우리가 식물을 돌보는 동시에 식물 또한 우리를 돌보는 셈이다. “우리들의 할머니처럼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대체로 식물을 잘 키우잖아요. 그 이유는 돌봄의 경험치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단기적인 관심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생명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들여다보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죠.” 흔히 꽃 사진을 찍으면 중장년이 되었다고 한다. 꽃 사진이 가득한 엄마의 카톡 창만 봐도 이 가설은 사실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식물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발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 있는 아카시아만 봐도 그래요. 우리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아카시아가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했겠어요. 그 결과가 지금 여기 있는 이 친구인 것이고요. 식물과 함께하다 보면 나 역시 생명의 이치와 순환의 고리 안에서는 미약한 존재라는 걸 실감하게 되는데, 그게 절망이 아니라 위로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일상적인 사건들과 크고 작은 분노와 슬픔을 뛰어넘는 엄청난 질서 안에 내가 들어 있다는 것이 위안과 기쁨이 되는 듯해요.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는 방법인 거죠.”
그리고 집 안에 있는 작은 식물은 생각보다 먼 곳까지 우리를 데려간다. 지극히 도시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처음부터 식물을 좋아한 것은 아니라는 이지연 대표는 식물과 함께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자연을 보호한다거나 환경을 지킨다는 표현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안에 내가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타자화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죠. 식물을 오랫동안 집중해서 돌보다 보면 내 앞에 놓인 식물뿐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자연이 보이기 시작해요. 아무리 내가 통제하는 공간 안에서 키운다 해도 식물의 DNA에는 계절과 시간의 변화가 입력되어 있잖아요. 식물을 키우면서 계절의 순환이 입체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이전에 계절이 스틸 사진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동영상처럼 보이게 된 셈이죠.”

합정 틸라 그라운드에서 만난 크리에이티브 팀 다각도. 왼쪽부터 김순태, 김지원, 여혜진, 이슬기, 성훈식, 안효준.

SOUND, 건강한 무위의 체조장, 사운드 짐나지움
테크놀로지가 발달할수록 삶이 편리해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엄지로 휙휙 내리기만 해도 펼쳐지는 온갖 자극으로부터 숨을 곳이 없어진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말하는 지금,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디지털 디톡스에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사운드 짐나지움(Sound Gymnasium)은 합정동 틸라 그라운드에 자리한 고독한 청취가를 위한 체조장이다. 조금 더 쉽게 풀어서 말하면 음악(Music)보다 더 원초적인 사운드(Sound)를 함께 듣는 공간이다. 이동 중에 유튜브를 켜서 노래를 듣거나 누군가를 만나 커피를 마시며 간간이 듣는 그런 종류의 행위와는 다르다. 사운드 짐나지움에서 판매하는 커피와 알코올은 주인공이 아닌 음악 청취를 거드는 도구일 뿐이다. 이곳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듣기다. 사람들은 푹신하고 거대한 빈백에 기댄 채 웅장한 공간에 떠도는 음파를 온몸으로 맞는다. 파동 속에서 누군가는 손으로 리듬을 타거나 머리카락이 쭈뼛 서기도 하고 발을 구른다.

사운드 감상을 위한 최적의 음향 시스템이 갖춰진 사운드 짐나지움 공간. 청각 경험을 전면에 두기 위해서 시각 자극을 최소화했다.

사운드 짐나지움을 기획한 성훈식 디렉터는 듣기의 행위는 우리가 감지하지 못할 뿐이지 청각이 아닌 온몸 운동에 가깝다고 말한다. “사운드는 물리적으로 운동을 해요. 마치 우리가 커다란 우퍼 스피커 앞에서 느끼는 진동이 그것이죠. 다만 일상적 사운드의 파동은 아주 미세해서 느끼지 못할 뿐이에요. 사운드 짐나지움은 어떤 사운드를 삼차원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체조장이죠.” 여혜진 기획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어폰을 통한 감상은 일차원(점)의 듣기이고, 헤드폰을 통한 감상은 이차원(면)의 듣기이며, 공간을 통해 듣는 것은 삼차원(공간)의 듣기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 우리의 감각은 어쩌면 퇴화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앨범 하나를 온전히 집중해서 듣기가 어려워졌으니까요. 점점 집중력을 잃어가는 시대에 또 다른 듣기 방법을 제안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운드 짐나지움을 기획했어요.” 빈백에 누워 있는 청취자들은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듯 보이겠지만 가장 동적으로 사운드에 빠져들게 된다. 자극의 홍수 속에서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두지 않고 하나의 파동을 쥐고 공명한다. 이것은 아마도 사운드 짐나지움이 지향하는 ‘건강한 청취’일 것이다.
사운드 짐나지움은 2024년 첫선을 보인 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했다. 신호탄 역할을 했던 ‘듣기 운동-전자음악 편’은 신호와 잡음, 리듬과 비트로 구성한 전자음악을 스피커로 함께 듣는 장이었다. 가재발, 윤지영, 디구르 등 국내 전자음악 아티스트들의 플레이리스트로 구성했으며 여성 전자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시스터 위드 트랜지스터(Sisters with Transistors)>의 상영회도 열었다. 첫 번째 시즌을 마친 2024년 12월, 사운드 짐나지움은 체조장을 군산회관으로 옮겨 지역의 특색을 가미한 플레이리스트를 공간과 함께 디자인했다. 그들은 합정의 사운드 짐나지움뿐만 아니라 코스모40, 군산회관 등에서 다양한 사운드를 공간과 함께 느끼는 방식을 앞으로도 다채롭게 기획할 예정이다. 두 번째 시즌은 2025년 여름을 기약하고 있다. 누군가를 앞에 두고 대화할 때 말소리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냥 배경음이 돼 버린다. 무심코 들리는 소리에만 휩쓸리다 보면 정말로 들어야 할 소리에 집중하는 근육은 점점 퇴화한다. 무엇을 들을지, 어떻게 들을지 곰곰이 침잠하며 사유할 공간이 필요하다면, 사운드 짐나지움을 찾아보면 어떨까. 사실 그곳에선 아무런 운동도 시키지 않는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한 채로 있다 보면 마치 명상처럼 깨닫는 바가 생길 것이다.

Editor
KIM JISEON, BAEK KAKYUNG
Photographer
CHOI YOUNG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