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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ING VOICES

인식의 변화와 선명한 영감을 이끄는 여성들

소설가 김주혜

기념비적인 데뷔작 <작은 땅의 야수들>로 2024년 톨스토이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김주혜.

호랑이와 같은 기세의 소설
2024년 톨스토이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은 땅의 야수들>의 저자 김주혜의 행보는 넓고 힘차다.

김주혜 작가의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의 책장을 펼친 후 며칠 동안 손에서 놓지 못하고 정신없이 읽었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매섭지만 묘하게 매혹적인 눈빛으로 하얀 눈밭을 달려가는 호랑이와 같은 기세를 지닌 소설이다. 글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미장센이 선명하게 그려져, 이 작품이 ‘글로 표현된 미술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소설의 시작점 역시 호랑이다. 첫 장편소설을 구상하던 김주혜 작가는 막막한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의 공원을 달리다 사냥꾼과 호랑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이후 ‘수십 년의 세월과 여러 등장인물이 마음속에서 별자리처럼 그려지는 듯’했고, 집에 가자마자 책상 앞에 앉아 사냥꾼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훨씬 오래전에 태동하기 시작한 이야기다. 김주혜 작가는 어린시절 어머니로부터 김구 선생 옆에서 독립운동을 도우신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그는 “이러한 가족 내력이 있기에 한국의 독립운동과 근대사는 고리타분한 역사가 아니라 내 현실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말한다.
<작은 땅의 야수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욕망과 삶의 이유, 또렷한 본성을 지닌 채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간다. 나는 무엇보다 소설 속의 강인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빠져들었다. 일제강점기에 기생으로 일하며 사랑과 우정, 이타심, 정의, 용기를 나누는 여성들은 삶 앞에서 결코 비겁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제 경험에 비추어봐도 여성은 본질적으로 강인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성별과 상관없이 누구나 용감할 수 있고, 그것은 각 개인의 천성이자 선택이지만요. <작은 땅의 야수들>의 남녀 인물들에게 제 영혼 한 조각을 주었습니다. 이 책에는 악인도 상당히 나오는데, 그들에게는 특히 신경 써서 제 내면을 부여했죠. 그래서 제 성격이 부분부분 드러나는 모든 인물에게 애착이 갔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한 인물은 정호입니다. 그리고 저와 가장 순수하게 비슷한 인물은 이상주의자 이명보, 그리고 전체를 통틀어서는 당연히 호랑이입니다.” 그에게 여성이라는 성별이 작업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저는 2006년에 비건이 되었는데, 그 계기도 여성인 젖소들 때문일 정도로 오래전부터 페미니스트입니다. 페미니즘은 누구를 배타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그리고 젖소나 양계장 속 닭과 같은 동물들)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평등주의 믿음이에요. 문학과 별개로 이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해왔어요. 결혼한 저나 친구들을 보아도 여성이 더 진취적이면서도 관대하고 희생적인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직업과 가족 사이에서 어느 하나도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 힘든 30대를 보내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죠. 저도 개인적으로 풀지 못한 과제가 창작이 아니라 바로 이 지점이에요. 2025년을 맞이하면서 새해 소망을 하나 생각했는데, 저의 행복과 안락함을 많이도 아니고 조금만 더 위하자는 것이었어요. 자선 활동, 부모님과 남편, 예술가로서의 도리 말고 저 자신을 위한다는 것 자체가 37년 동안 살면서 처음으로 생긴, 너무나 생소한 발상이었어요.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여성적 이타심이 지금까지 제 원동력이었는데, 앞으로 지속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를 위하는 부분도 어느 정도 남겨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일어난 거죠. 얻는 것보다 주는 게 더 많은 삶을 살면서도 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죄책감 없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때 한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가장 완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가 김주혜

김주혜 작가는 런던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영어로 먼저 쓰여진 <작은 땅의 야수들>은 14개국에 번역 출간되어 전 세계의 독자와 만났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문학 작품에 수여하는 데이턴문학평화상 외 3개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2024년에는 폭넓은 서사와 호흡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톨스토이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와 함께 톨스토이문학상 해외 문학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게 가장 큰 문학적·인도주의적 영향을 준 레프 톨스토이를 기리는 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정말 큰 영광입니다. 작가의 길은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고, 대부분의 책들이 시간이 흐르면 잊히죠. 그렇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어떤 상황에서도 평생 간직할 자신감을 얻었어요.”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집필을 이어나가고 있는 김주혜 작가는 아홉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포틀랜드로 이주했다. 그와의 대화는 모두 한국어로 진행되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한국어를 사용해온 그는 이중언어 사용자로서 고 최인호 작가의 단편소설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그에게 자신의 작품을 번역가와 함께 한글로 옮기는 과정은 각별한 일일 수밖에 없다. “문학은 철학의 미적 표현입니다. 그 철학은 가치관에서 나오는 것이고, 가치관을 형성하는 여러 요소 중 언어의 영향은 정말 중요하죠. 제 문학의 본질이 되는 인간에 대한 연민, 자연을 향한 경외 등은 한국어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어요. 한국어는 시적인 언어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 이는 의성어와 의태어에서 부각됩니다. 예를 들어, 올해 한국에서 출간될 차기작 <밤새들의 도시> 중에 ‘입구 양쪽에는 두 개의 가스 제등이 있었고, 그 속에는 진짜 불꽃이 훨훨 춤추고 있었다’는 문장이 있어요. 번역가는 ‘그 속에는 진짜 불꽃처럼 보이는 불빛이 춤추듯 흔들리고 있었다’라고 썼지만, 저는 춤 비슷한 게 아니고 춤을 정말 ‘훨훨’ 췄다고, 더 역동적으로 불꽃의 생명력을 강조한 거죠. ‘훨훨’은 불, 무용, 그리고 이 책의 모티프인 새를 한 번에 암시하는 아주 특이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국어에는 모든 생물, 무생물의 존재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관용이 묻어납니다. 이런 가치관을 심어준 사랑의 언어인 한국어가 자랑스러워요.”
<작은 땅의 야수들>은 한국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시대와 지리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이야기이도 하다. 김주혜 작가는 자연 파괴, 전쟁, 기아 등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유의미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창작의 목표로 삼았고, 이것이 <작은 땅의 야수들>이 전 세계 독자들과 만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문학뿐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도 발현된다. 2023년까지 친환경 생활과 생태문학을 다루는 온라인 잡지 <피스풀 덤플링(Peaceful Dumpling>의 창업자이자 편집장으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소설 창작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금은 강연이나 인터뷰를 통해서 친환경 생활을 추천하고 시간이 생기는 대로 환경 기획 기사를 쓰고 있어요. 지난해에는 오리건주에서 야생 늑대들을 따라다니며 기사를 썼는데, 커리어뿐만 아니라 제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제 여러 활동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딱 한 가지만 말할 수 있다면, 비거니즘을 권하고 싶어요. 비건 식생활은 기후변화, 제6차 대멸종과 생물다양성 파괴, 자원 고갈 등 큰 위기에 맞닥뜨린 세상을 한 개인이 도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죠. 처음 비건이 되기로 결정하면서 저 자신한테 이로운 효과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 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비건이 된 거라고 말하곤 해요. 그만큼 비건 생활은 몸과 정신, 특히 영혼에 큰 변화를 주죠.” 또한 호랑이에 대한 애착이 깊은 그는 <작은 땅의 야수들>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고, 비영리단체인 한국범보전기금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한반도 야생 호랑이와 표범을 복원하는 일을 지원하기도 한다. “한국 호랑이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중국이 아니라 한반도에 밀집해 서식했으며, 지금까지도 한국인의 둘도 없는 상징이자 가족입니다. 일제감정기 때 민족정신 말살 정책에 의해 절멸된 것만 봐도 호랑이가 얼마나 중요한 우리의 자연유산인지 알 수 있죠. 이런 호랑이 복원을 국가적 차원에서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재는 비영리단체가 해외 보호가들을 지원하고 세계 호랑이 학회에서 발표를 거듭하며 한국이 역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호랑이의 고향이고 미래의 보유국이라는 점을 국제적으로 인식시키는 매우 큰 성과를 이루고 있어요. 제가 가진 가장 소중한 물건은 극동러시아 야생 호랑이 발자국 석고예요. 지난가을에 주 모스크바 한국문화원 박정곤 원장님이 선물하셨는데, 힘들 때마다 그 큼직하고도 사랑스러운 발자국에 손을 대고 에너지를 받고 있어요. <에비뉴엘> 독자분들도 한국범보전기금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작은 땅의 야수들 책, 밤새들의 도시 책

(왼쪽)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한 한국의 역사를 담은 <작은 땅의 야수들>
(오른쪽) 올해 국내 출간을 앞두고 있는 차기작 <밤새들의 도시>.

우리 모두가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선택을 하는 것처럼, 예술가들도 작품 안에서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작은 땅의 야수들>을 읽다 보면 김주혜 작가는 삶과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와 독립을 위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소설 속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예술가로서 자신이 맡은 책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최근 세 번째 책 <A Love Story from the End of the World>(2025년 11월 미국 출간)의 작가의 말을 쓰며 생각을 좀 정리했어요. 1964년 파리의 뮤투알리테에서 열린 토론에서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Que peut la littérature?)’라는 질문을 놓고 논쟁이 일었죠. 저는 여기서 리카르두가 주장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도 ‘인간을 위한 예술’도 허위라고 말했어요. 그는 ‘예술은 인간 그 자체’라고 믿었죠. 저는 리카르두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예술이 윤리적 실용성이 있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선전(Propaganda)이 아무리 노력해도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죠. 다만 ‘예술이 인간’이라면, 예술은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야 하죠. 그리고 예술가는 본인의 예술에만 책임이 있지 않고, 예술 전체와 또 인간 그 자체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예술가로서 제가 할 일은 제 영혼을 조각내어 담은 책으로 독자의 영혼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몸담은 자선 사업과 자연보호 활동이 모두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한 예술 활동의 일부죠. 그래서 늘 일이 많고 복잡하지만, 매일 이런 고민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EDITOR 김지선, PHOTOGRAPHER 커스티 심(KIRSTY SIM)

건축가 김사라

신수동에 위치한 다이아거날 써츠 건축사무소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건축가 김사라.

높고 비스듬한 비계 위의 여자
다이아거날 써츠의 대표 건축가 김사라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건축을 위해 쌓은 생각의 구조물은 언제나 예측 불허하다.

건축가 김사라와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는 길, 그녀가 꼭 자신처럼 느껴졌다던 KM-53을 찾아봤다. 오삼이라 불리는 반달가슴곰이었다. 2015년 태어난 KM-53은 지리산에 방사한 다른 반달가슴곰과는 달리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수도산에서 발견돼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KM-53은 계속해서 사람들에 의해 방사 지역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개척 정신은 멈추지 않았다. 경북, 경남, 전북, 충북 등 다양한 지역을 종횡무진했고, 벌통을 옆구리에 낀 채 두 발로 서서 도망갔다는 증언이 난무했다. 인간의 사고에서 살짝 비껴서 KM-53의 입장에 서 보니 ‘개척’ ‘탈주’ ‘종횡무진’ 같은 단어들에 사뭇 어깨가 으쓱해진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곰이라니. 하지만 KM-53의 계속된 탈주는 마취총에 맞고 폐사에 이르게 했다. 그 안타까운 소식이 마치 자신의 청춘과 이별하는 느낌이었다는 김사라의 말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도 건축계가 아닌 뜻밖의 곳이었다. 그녀가 기획한 영화 <남이 설계한 집>은 2020년 서울무용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그 묘한 영상을 보며 그간 건축이라 여겼던 범주가 지리산에서 수도산만큼은 아니지만, 막대하게 넓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려한 영상 속엔 폐허가 등장했고 그 주위를 생생한 숲이 둘러쌌다. 한 명의 안무가는 버려진 공간 안에서 기하학적 선과 함께 유령처럼 몸을 움직였다. 엔딩 크레디트에는 사람 이름 대신 공간(Space) 이름이 주인공으로 올랐다. 그녀는 ‘건축은 건물을 짓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 위해 무용으로, 영상으로, 그녀의 기획으로 폐허를 리모델링한 것이다. 거기에서 나아가 ‘건설’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한국 건축 문화에 대한 일침이기도 했다. 김사라는 건물을 짓는 대신 가장 유니버셜한 차원을 지닌 인간의 몸으로 건축한 셈이다. 그녀의 표현대로 이러한 ‘삐딱한’ 접근은 책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021년 공모를 통해 당선된 작업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셔틀버스 쉼터를 설계했다. 김사라는 ‘예술은 쓸모없다’고 여기는 혹자를 정조준하듯 낮에는 유용한 버스 정류장으로, 밤에는 미술관의 여느 작품처럼 새로운 사유를 촉발하는 디자인을 내놓았다. 물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익살스럽게도 ‘쓸모없는’과 ‘유용한’의 의미를 또 한번 고심하도록 만드는 제목을 지었다. 손에 잡히려 하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탈주했을 KM-53의 형체가 주위를 배회하는 것만 같다. 또한 김사라의 삐딱함이 방점을 찍는 것은 건축사무소 이름이다. ‘다이아거날 써츠(Diagonal Thoughts)’. 처음 들은 사람은 쉽게 발음하기 어렵지만, 그녀의 행보를 잘 설명하는 단어가 이 이름 말고 또 있을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세상에 많은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어요. ‘비스듬한 사고’라는 이름에는 건축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이 중요하다는,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 들어 있어요.”

왼쪽 블랙윙 연필이 쌓여 있는 책상 위의 모습, 오른쪽 다이아거날 써츠의 한쪽 벽엔 커다란 서가가 있었고, 김사라 건축가가 자주 꺼내 읽는 책 위주로 선별해놓았다

(왼쪽) 건축 작업이 텍스트에서 출발할 때가 많기에 김사라는 평소에도 책에 밑줄을 그으며 읽곤 한다. 블랙윙 연필이 쌓여 있는 책상 위의 모습.
(오른쪽) 다이아거날 써츠의 한쪽 벽엔 커다란 서가가 있었고, 김사라 건축가가 자주 꺼내 읽는 책 위주로 선별해놓았다.

전 세계 건축학과 졸업생 중 여성 비율은 42%다. 건축사 자격증 취득자 중 여성 비율은 28%고 활동하는 건축가 중 여성의 비율은 17%다(<우리는 여성, 건축가입니다> 데스피나 스트라티가코스 저). 건축학과를 졸업한 많은 여학생과 여성 건축가는 어디로 갔을까? 여성 건축가로 일하는 고초에 대해 물을 수밖에 없었다. “‘여성 건축가’라는 타이틀로 일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 자체가 슬플 때가 있어요. 건축계에서 여성이 소수라는 이유로 다이아거날 써츠가 해온 작업의 고유성과 크리틱이 옅어지고 여성성만 전면에 부각될 때가 있거든요. 물론 여성 건축가가 희귀하기 때문에 관심을 받고 회자되는 것도 사실이긴 해요. 초반에는 여성 건축가로서 강연에 초대되면 그리 달갑진 않았지만,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었어요. 여성 동료와 선후배를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기게 됐죠.” 여성이 어느 연령대 이상 되면 자연스레 결혼과 육아로 일터를 떠나는 것, 여전히 고위직을 차지하는 것은 남성인 현실, 임금과 처우의 젠더 불균형 등을 떠올리면 뾰족한 방법이 있긴 한 걸까? 김사라는 답답한 마음에 이화여대에서 건축계의 젠더 이슈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교수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했다. “도대체 페미니스트가 뭔지 모르겠다는 제 말에 교수님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셨어요. ‘페미니스트가 별것이 아니야. 나보다 약자 편에서 생각하기만 해도 지금보다 충분히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지.’”
사무소 초반에는 소위 ‘파이터’처럼 건축 프로젝트도 선언적으로 했다던 김사라는 지금 또 한 번의 ‘트랜지션’을 겪는 중이라고 했다. “지금은 대놓고 선언하지는 않아요.(웃음)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의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 다이아거날 써츠를 운영하며 만만치 않은 순간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오히려 내 앞에 있던 선배와 동료들이 고생을 많이 했음을 느끼며 겸손해지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삐딱한 성정은 여전히 있어요. 이게 더 사그라지기 전에 책으로 기록해보고 싶어요. 언젠가 그런 마음이 옅어졌을 때 다시 읽으며 정신 차리도록요.” 건축 작업을 할 때 유난히 더 많은 책을 읽는다는 그녀는 건축이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좋아하는 책 속 문장으로 답했다. 이우환 화백의 <여백의 예술>이란 책 중 ‘회화의 명운’에 있는 문장이다. “인간은 필사적으로 세계를 만들어 세우려고 하고, 자연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대지로 되돌리려고 한다. 있게 하려는 힘과 없애려는 힘의 치열한 맞섬은 아름다운 겨룸이다.”
“건축 프로젝트마다 땅이 다 달라요. 하지만 건축가는 하자가 없는 규격화된 완전체를 만드는 사람들이죠. 같은 나무더라도 다루는 방식에 따라 결과가 엄청 달라져요. 때로는 이런 자연의 섭리에 대항하는 게 괴롭기도 하지만, 저는 자연과 겨루는 과정이 아름다운 작업이라 생각해요. 다이아거날 써츠가 단순히 구축만을 중시하지 않고 상상의 단계부터 기획, 물질화하는 단계까지 다루려는 이유기도 합니다.” 군데군데 밑줄이 그어져 있고 자주 꺼내서 살짝 때가 탄 페이지를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우환 화백이 결국 그리고 싶은 그림은 “완벽하고 견고하며 잘난 체 버티는 작품”이 아니라 “게임의 양면을 볼 수 있는, 위태위태한 밸런스를 지니는 그림”이라고 했다. 마치 자유를 위해 위태로운 게임을 마다하지 않았던 KM-53처럼, 그 속에 입력됐다 나오면 예측 불가능한 결괏값을 보여주는 다이아거날 써츠처럼 말이다.

EDITOR 백가경, PHOTOGRAPHER 이재안

이은지 셰프

뉴욕에서 페이스트리 부티크 리제를 운영 중인 이은지 셰프.

다정하고 강인한 디저트
이은지 셰프가 만들어내는 정갈하고 아름다운 디저트는 풍요로운 한국의 맛을 품고 있다.

뉴욕에서 가장 창의적인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페이스트리 부티크 ‘리제(Lysée)’는 이은지 셰프가 10대 시절 장래 계획을 적은 노트에서 출발했다. 그는 페이스트리 셰프가 되기 위해 10년간 프랑스에서 제과제빵 기술을 배우고 수련을 한 뒤 뉴욕 미슐랭 한식당 ‘정식’의 디저트 총괄 셰프를 거쳐 2022년 뉴욕 플랫아이언 건물에 숍을 열었다. 이듬해에 ‘미식 가이드북의 가이드’라 불리는 <라 리스트(La Liste)>는 리제의 이은지를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페이스트리 셰프로 뽑았다. 어느새 리제는 <뉴욕 타임스>가 주목하고 뉴요커들이 몰려드는 핫 플레이스를 넘어 유명 셰프들이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공간이 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찾아주는 손님들도 감동적이지만, 업계 사람들이 방문하면 조금이나마 인정을 받는 듯해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리제의 모든 디저트에는 한국 식재료가 녹아들어 있다. 볶은 현미 우유가 포인트인 대표 디저트 ‘리제(Lysée)’는 프랑스식 디저트 식감에 고소하고 구수한 한국식 풍미가 어우러진다. 옥수수 미니어처 같은 귀여운 무스 케이크 ‘콘(Corn)’을 한입 베어 물면 구운 옥수수 알갱이가 향수를 자극한다. ‘코리안 프렌치 뉴요커’라는 이은지 셰프의 정체성이 확연하게 인지될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다. 그는 시골에서 할머니가 나눠줬던 맛과 향의 기억을 자양분 삼아 프랑스 기술로 맛의 콘셉트를 실물로 빚어내고, 뉴욕이라는 무대에서 그 결과물을 소개한다. “뉴욕 사람들은 새로운 맛의 경험에 굉장히 열려 있어요. 대추와 흑임자를 넣은 마들렌과 약과 세트나 수정과 라테 등에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아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옥수수 디저트 ‘콘’, 디저트 ‘리제’

(왼쪽) 리제의 시그너처 디저트 중 하나인 옥수수 디저트 ‘콘’.
(오른쪽) 볶은 현미 우유 무스, 피칸 사블레와 프랄린이 어우러지는 디저트 ‘리제’.

한국, 프랑스, 미국의 맛을 섞는 최적의 밸런스는 자신의 미각으로 결정된다. 1층 식당과 2층 갤러리를 나누는 리제의 공간 아이디어도 직접 계획했다. 리제의 모든 콘셉트가 어디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것이기에 오너 셰프에게는 베이킹뿐 아니라 운영과 관리 전반에 걸쳐 매일이 도전이다. 그 과정에서 상명하복의 리더십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리더십을 추구한다. “식당 업계는 대부분 남자들입니다. 초창기에는 신체적 조건 때문에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서 무거운 것도 열심히 나르고 높이 있는 물건도 알아서 꺼내곤 했죠. 디저트팀을 이끌던 시절, 남성 조직의 관습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헤드 셰프에게 내 방식으로 이끌어보겠다고 제안했고, 얼마 뒤 결국 제 방식을 존중한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강한 리더십이 있다면 다정한 강함도 있다는 것을 배웠고 스스로에게 그 방식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다정하지만 강한 셰프의 존재 덕분인지 리제는 한국식 온기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여기서 저는 엄마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모두를 돌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열심히 일하고 그 결과물을 보여주면 존경심은 당연히 따라온다고 믿어요.” 열정, 확신, 끈기, 창의력, 늘 메모하는 태도, 그리고 다정함이 어우러져 이은지 셰프만의 은은한 카리스마가 만들어진다. 정갈하게 아름다운 모양의 내부에 상상을 초월하는 맛의 조화가 펼쳐지는 리제의 디저트는 이은지 셰프와 꼭 닮았다.

WRITER 홍수경, PHOTOGRAPHER 이현우

황금비 나무 의사

천리포수목원 작업복을 걸친 황금비 나무 의사.

나무들의 세계에 도착한 여자
천리포수목원에서 나무 의사로 일하는 황금비는 편리한 삶을 한번쯤 돌이켜볼 것을 도시인들에게 청한다.

나무 의사 황금비와 만나기로 한 곳은 서울 창경궁이었다. 폭설이 내린 뒤였다. 대온실로 향하는 길목에 눈보다 하얗고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그 심상치 않은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황금비에게 물었다. “창경궁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어떤 나무인가요?” “바로 저 소나무, 백송이에요. 정말 특이하게 생겼죠? 백송은 유난히 키우기가 어려운 수종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창경궁에 있는 백송은 오래전 중국에서 사신들이 가져온 씨앗이 저렇게 크게 자랐죠.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에요.” 백송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그녀 덕분에 평소에는 간결한 감탄사만 내뱉고 지나쳤을 나무 앞에서 잎과 줄기, 해마다 자연히 벗겨진다는 흰 껍질을 면면이 살필 수 있었다. 미술관에 걸린 걸작을 보는 것처럼. 나무 의사는 그저 지나쳐온 나무를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만드는 멋진 직업인 것 같았다. 그녀의 본활동지는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이지만, 작업복과 도구를 허리춤에 차고 나무에 대해 얘기하니 창경궁 대온실도 익숙한 일터처럼 느껴졌다.
황금비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 의사라는 직업은 상태가 안 좋은 수목의 병을 진단하고 그에 따른 처방을 내리고 직접 치료도 한다. 그에 더해서 천리포수목원을 찾은 관람객에게 숲 해설을 하고 때로는 관람로를 정비하기도 하며 수목원의 소식을 알리는 홍보팀장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약 592제곱미터 규모의 천리포수목원은 국내에서 최다 식물종을 보유한 식물원이자 국제수목학회가 아시아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정한 곳이다. 천리포수목원에서 한 해 동안 나무들과 동고동락한 황금비는 원래 신문기자였다. 5년간 정치 이슈와 각종 사건 사고를 취재했던 그는 무슨 이유로 돌연 나무 의사가 되었을까? “팩트를 기반으로 쓴 기사도 내일이 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서른 중반이 되니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그만두었죠.” 인생의 행로 변화에 대해 비교적 명쾌하고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여러모로 긴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굳은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편집부에는 항상 소개해야 할 신간 도서가 쌓여 있었어요. 그중에서 우연히 꺼내 읽은 <오버스토리>라는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죠. 단박에 나무 의사라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결심했어요.” 2019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워스의 <오버스토리>는 미대륙의 얼마 남지 않은 원시림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아홉 사람의 삶을 다룬 책이다. “여기는 나무가 끼어 사는 우리 세계가 아니다. 나무의 세계에 인간이 막 도착한 것이다.” 책 속 명문장처럼 황금비는 나무 의사로 일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한층 강해졌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나무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2차 개화를 해요.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 한여름에도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는 거예요. 여러 번의 폭염경보가 있던 지난여름, 이전과는 다른 이상 사이클이 발견돼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러한 맥락에서 황금비는 수목원이 해야 하는 역할이 커져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자생종들의 서식지가 기후위기로 인해 점점 줄고 있어요.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 개체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수목원과 교류해서 개체를 증식하고 수집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봐요.”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식물용 가위로 나무를 손질하는 모습. 황금비 나무 의사가 좋아하는 창경궁의 오래된 백송

(왼쪽)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식물용 가위로 나무를 손질하는 모습.
(오른쪽) 황금비 나무 의사가 좋아하는 창경궁의 오래된 백송.

하지만 열심히 치료하고 보살펴도 어쩔 수 없이 나무가 죽는 일이 생긴다. 그녀가 천리포수목원에서 나무 의사로 일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30여 년 된 나무가 해충 피해로 고사했다. 잘린 그루터기에는 천리포수목원의 전통에 따라 수종과 심은 날짜, 고사 원인 등을 기록한 팻말을 붙였다. 사람의 일생을 기억하기 위한 묘비처럼 천리포수목원의 나무 의사와 가드너들이 한 그루의 이야기도 허투루 잊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반면 도시에서는 선거 홍보 현수막 따위를 걸기 위해서 길가에서 멀쩡히 자라는 가로수를 한 치의 고민 없이 베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황금비 역시 수십 년간 도시 생활을 했지만, 태안으로 이주한 이후에는 도시의 삶 자체가 친환경적일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했다. “도시는 인간에게 너무나 편리한 공간이에요. 편리함 자체가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죠. 많은 사람이 지금의 생활 방식을 되돌아보고 서울을 떠나서 살아봤으면 해요.” 척박한 곳에서도 자신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할 때쯤 여성 나무 의사로 일하는 게 고되지 않을지 궁금해졌다. “천리포수목원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땀을 뻘뻘 흘리며 포대를 날라요. 물론 남성만큼 무거운 포대를 짊어지지 못할 때도 있죠. 하지만 느리고 더딜 순 있어도 ‘함께 땀 흘리며 열심히 했다’는 결과가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에요.” 기자가 되자마자 그녀는 강남역 살인 사건과 미투 운동 한가운데 있었고 여성이 임원이 됐다는 기사를 수도 없이 썼다. 하지만 정작 취재로 만난 고위직 간부는 전부 남성인 사실에 괴로웠다. “한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긴 한숨을 내뱉었지만, 그녀는 직장에서부터 변화를 이끌기 위해 부지런히 기반을 닦는 중이었다. “연차가 쌓이다 보니 여성으로서 겪은 어려움에 대해서 직장에서 투정만 할 수 없겠더라고요. 저보다 어린 여성 후배들이 불만을 토로할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그들이 일하기에 더 좋은 직장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사람이 아닌 자연을 취재원으로 삼는 황금비는 예전보다 더 넓고 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듯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황폐한 땅에 홀로 수십 년간 나무를 심어 결국 황무지를 숲으로 바꾼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공동의 선을 위해 온몸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EDITOR 백가경, PHOTOGRAPHER 이재안

도예가 카미유 로마냐니

밝고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의 작품을 선보이는 도예가 카미유 로마냐니.

파리 생-마르탱 운하를 마주하고 있는 아틀리에

파리 생-마르탱 운하를 마주하고 있는 아틀리에.

강하고 부드러운 세라믹
도예가 카미유 로마냐니는 생명력이 꿈틀대는 아름다운 형체를 창조한다.

파리 생-마르탱(Saint-Martin) 운하를 마주한 건물, ‘아틀리에’라고 적힌 벨을 누르고 들어가면 아담한 중정을 끼고 있는 카미유 로마냐니(Camille Romagnani)의 작업실이 나온다. 볕이 충분히 들어오는 가로로 넓은 유리창 안에는 작가 특유의 밝고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를 머금은 작품들이 따뜻한 기운을 전달하며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파리 국립산업디자인학교(ENSCI Les Ateliers)에서 텍스타일을 전공한 후 도예 기술을 접하면서 섬유디자인을 통해 익힌 색채 감각을 새로운 물성에 대입하고 있는 카미유 로마냐니는 특유의 질감과 아름다운 컬러로 파리에서 떠오르는 신예 도예가로 주목받는 중이다. 그가 흙이라는 물성에 매료된 것은 그리스 아테네에서였다. “직물을 제작하는 일은 아주 긴 프로세스가 필요해요. 직조 작업 자체가 능동적이기보다 수동적이라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에 비해 세라믹 작업은 감정을 바로 표현할 수 있고 과정이 훨씬 명쾌하죠.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는 아테네에 있는 도예가 친구의 작업실에서 아마추어 과정을 수료하고 개인 작업실을 구한 후 가마를 마련해 스스로 테크닉을 발전시키면서 전공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그녀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컬러다. 비슷하지만 다른 여러 톤의 색감이 섞여 깊이를 형성하는 결과물은 햇살이 쪼개지는 강물, 이슬이 맺힌 나뭇잎, 잔잔한 구름이 펼쳐진 하늘을 연상시킨다. 보는 사람들을 매료하는 부드럽지만 강한 힘이 있다. “많은 사람이 모네의 수련이 연상된다고 해요. 아마도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하늘을 통해서 파랗고, 맑고, 불그스름하고, 금빛으로 반짝이는 색 등 수만 가지 컬러 팔레트를 찾을 수 있는데, 결국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컬러를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사용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는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강한 이미지를 지녔지만 부드러운 꽃과 자연을 그렸던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를 들었다. 그 외에도 텍스타일을 예술의 경지로 이끈 콜롬비아 아티스트 올가 데 아마랄(Olga de Amaral), 자연을 배경으로 퍼포먼스를 펼치는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카미유 로마냐니는 본인 작업 특유의 ‘여성성’은 작품의 아이덴티티라 할 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오늘날의 여성성은 과거와 다르게 ‘강인한 부드러움’을 상징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지아 오키프, 올가 데 아마랄, 아나 멘디에타, 그리고 카미유 로마냐니처럼.

WRITER 양윤정, PHOTOGRAPHER 셀린 사비(Céline Saby)

EDITOR
KIM JISEON, BAEK KA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