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LONGEVITY CUISINE

미식의 즐거움을 지키고 건강한 노화를 돕는 롱제비티 다이닝의 진화.

항산화에 좋은 각종 베리류와 꽃배추 시계와 포크 미식과 건강한 노화의 상관관계

최근 <보그 비즈니스>는 “새로운 립스틱이나 페이스 크림보다 더 탐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오래 사는 것’이다”라는 카피와 함께 2025년에 주목해야 할 키워드로 ‘롱제비티(Longevity, 장수)’를 꼽았다. 최신 유행 아이템과 장수 식단이 나란히 배치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과거에 사람들은 대부분 100세까지 사는 시대에 시큰둥하게 반응했고, 설령 오래 살길 원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장수를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은 쿨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에 본 한 유튜브 방송에서 진행자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는 아마도 ‘혈당 스파이크’일 것이라는 농담을 나눴다. 혈당 관리나 노화 속도를 늦추기 위한 식이요법 등은 더 이상 일부 세대나 소수 계층의 관심사가 아니다. 정보의 습득 속도가 빠르고 자기 관리에 능한 젊은 세대는 무리한 다이어트 대신 근력운동과 간헐적 단식을 이어나가며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사실 장수 식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먹느냐다. 하버드 의과대학 유전학 교수 데이비드 싱클레어는 저서 <노화의 종말>에서 25년 동안 노화를 연구하고 수백 편의 논문을 읽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언, 즉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적게 먹어라.” 물론 이 말이 혁신적인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며 말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장수 식단과 더불어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식습관은 간헐적 단식이다. 동시에 간헐적 단식의 유행은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유일한 한 끼, 제대로 된 저녁 식사의 소중함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흐름 속에 ‘롱제비티 다이닝(Longevity Dining)’이 있다. 전 세계 셰프들은 베리류나 아티초크, 비트 등의 항산화 식재료와 발효 음식 연구에 뛰어들었고, 단식 이후 신체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는 코스 요리를 구성하고 있다. 사람들이 셰프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사실 딱 한 가지다. 어떻게 하면 미식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
스위스 제네바의 호숫가에 있는 메디 스파의 선두 주자 ‘클리닉 라 프레리(Clinique La Prairie)’는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윈스턴 처칠 같은 유명인들의 젊음을 회복시키는 곳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이곳에 있는 시즈(Seeds) 레스토랑을 이끄는 셰프 다비드 알레산드리아(David Alessandria)는 안식년이나 휴가 기간에 집중적인 관리로 노화 속도를 늦추려는 고객을 위한 요리를 만든다. 물론 그의 고객은 맛에도 까다롭다. 그는 최근 롱제비티 전문 팟캐스트 ‘라이브 롱 앤드 마스터 에이징(Live Long and Master Aging)’에 출연해 식물성 식재료를 기반으로 요리를 하면서 맛과 풍미를 유지하는 비결을 이야기했다. “저는 프랑스 셰프예요. 이전에는 요리에 버터를 많이 사용했다는 뜻이죠. 지금은 버터나 동물성 지방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요. 설탕이나 글루텐도 마찬가지죠. 제한되는 식재료가 많아질수록 맛을 내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철 식재료예요. 다른 무엇보다 맛을 위해서죠. 예를 들어 망고 소르베는 꼭 망고가 제철인 1월이나 2월에 만들어야 설탕을 쓰지 않고도 최상의 맛을 낼 수 있어요. 맛이 떨어지는 여름 망고로 만든 소르베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거든요.” 또한 롱제비티 식사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식사 사이의 균형이다. 시즈 레스토랑은 리조트 내에 있어 집에서처럼 삼시 세끼 식사를 하는 고객이 많다. 따라서 그는 아침과 점심, 저녁의 균형을 맞추는 일에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예를 들면 아침 식사에는 과일을 넣지 않는 대신 점심 메뉴에 사용해요. 또한 육류는 점심에 내고, 저녁에는 채식 기반 메뉴를 권해요. 저 역시 몸의 부기를 유발하는 붉은 고기를 먹지 않아요. 대신 일주일에 두 번씩 닭고기를 섭취하고, 직접 기른 닭이 낳은 달걀을 매일 먹고 있어요. 또한 시즈 레스토랑에서는 손님에게 알코올이나 커피를 권장하지 않아요. 프로바이오틱스가 풍부한 콤부차나 발효 음료를 직접 만들어 내죠.”
뉴욕의 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의 셰프 다니엘 흄(Daniel Humm)은 2021년에 3년 연속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자신의 레스토랑을 완전히 채식 기반으로 전환하며 파인다이닝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그너처 메뉴였던 훈제 오리 요리 등 모든 동물성 재료를 과감히 제하고 제철 채소와 곡물, 허브를 중심으로 한 창의적인 코스를 개발했다. 또한 정밀 발효나 저온 숙성 같은 기술을 동원해 식물성 식재료에 깊은 감칠맛을 부여했다. 이를테면 ‘밭의 캐비아’로 불리는 톤부리(Tonburi)에 훈제한 순무 에크라제 아몬드로 만든 육수를 곁들여 풍미를 살린 요리를 선보이는 식이다. 이제 푸아그라나 캐비아, 버터로 익힌 랍스터가 아니라 비트와 당근이 그의 레스토랑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랫동안 파인다이닝은 희귀하고 비싼 동물성 식재료를 중심으로 고급스러움을 정의해왔다. 그러나 사실 당근처럼 평범한 식재료로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이야말로 셰프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다니엘 흄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럭셔리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해요. 중요한 건 원재료의 가격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과 손으로 빚어내는 노력, 그리고 특별한 경험이죠. 사람들은 아직도 채소보다 고기가 더 고급 식재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람들이 비트와 당근, 오이로 만든 건강한 음식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향이 생긴다면, 더 많은 식물 기반 레스토랑들이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패션에서는 런웨이에 오른 스타일이 결국 H&M에서도 판매되죠. 제가 원하는 성공은 또다시 미슐랭 스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맥도날드 메뉴에서 당근 타르타르를 보는 것이에요.”
이탈리아 아브루초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레알레(Reale)의 셰프이자 럭셔리 브랜드 불가리와 지속적으로 협업을 이어가고 있는 니코 로미토(Niko Romito)는 14코스 채소 테이스팅 메뉴를 선보였다. 이 메뉴의 특징은 렌틸콩, 병아리콩, 강낭콩 등 다양한 콩류를 풍성하게 사용한 것이다. 일상의 식탁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파인다이닝에서는 자주 사용되지 않았던 콩류 같은 식재료를 연구하면 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는 우리의 소박한 렌틸콩밥 식단에도 영감을 준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게라니움(Geranium)은 2022년에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으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모든 메뉴를 건강식으로 바꾼 직후에 거둔 성과였다. 게라니움의 셰프 라스무스 코포드(Rasmus Kofoed)는 개인적으로 채식 위주 식생활을 하며 건강을 관리해왔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려면 결국 채소가 답이라는 신념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내가 먹지 않는 고기를 손님의 테이블에 올리는 일이 점점 의미 없게 느껴졌다”고 회고하며, 제철 채소와 약간의 해산물만으로 구성한 창의적인 코스 요리를 선보였다. 야생 버섯을 닭고기처럼 요리한 메뉴 ‘치킨 오브 더 우즈(Chicken of the Woods)’가 대표적인데, 날씨에 따라 버섯의 품질이 떨어지면 즉시 다른 채소로 대체하는 등 철저히 자연의 리듬에 맞춰 메뉴를 유연하게 조정한다. 이처럼 건강과 지속 가능성, 미식을 조화하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요리는 단순하고 밋밋한 건강식에 셰프의 창의성이 더해지면 멋진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수를 위한 식사는 절제나 인내가 아니라 영감과 즐거움을 주는 새로운 럭셔리로 자리 잡고 있다.

Editor
KIM JISEON
photographer
LEE HYUNSEOK
FOOD STYLIST
김진영